[경제포커스] '경포대' 트라우마

조선일보
입력 2020.02.13 03:14

靑, 경제 실패로 지지율 떨어진 2006년 지방선거 참패 떠올려
반시장·반기업 못 벗어나면 경포대는 또다시 현실 될 것

김영진 경제부장
김영진 경제부장
연초에 청와대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실린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의 신문 스크랩을 돌려 봤다고 한다. 참모들은 제목까지 흡사한 비판 기사들을 보며, 당시 '경포대' 프레임에 걸려 여당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한 끝에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걸 떠올렸다고 한다.

경포대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란 뜻으로, 2005년 7월 손학규 경기지사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경제를 등한시한 노무현 대통령을 빗대서 한 말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연정(聯政)과 같은 정치에만 올인하고 경제는 뒷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경포대란 신조어는 급격히 확산됐고 여론은 갈수록 악화됐다. 그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경제는 내리막길을 탔다. 5%가 목표였던 경제성장률은 전망치가 계속 낮아진 끝에 4%에 머물렀다. 이듬해에도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고, 경제가 무너지는 만큼 여당 지지율도 하락했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2005년 초반엔 30% 수준으로 한나라당과 비슷했으나 경포대 발언이 나온 즈음엔 20%대로 떨어지고, 이듬해엔 10%대로 추락했다. 너덜너덜해진 지지율은 6월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가 15년 전 기사들을 꺼내본 건 지금 경제 상황이 그때를 기억할 만큼 녹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보다 0.7%포인트나 낮아진 2%에 그친 것도 경포대 얘기가 나온 2005년 상황과 비슷하고, 최근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이 경제 문제란 점도 닮은꼴이다. 더욱이 4월 총선이란 대규모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는 점은 2006년 지방선거 트라우마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로 경제를 포기해서 경포대로 불린 걸까. 아니다. 기업들을 적대시하며 규제로 옥죄고 부동산을 잡겠다며 급격하게 세금 부담을 올리는 등 반기업·반시장 정책으로 한국 경제를 뒷걸음질시킨 게 근본 원인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이 정부는 한술 더 떠 최저임금을 2년째 두 자릿수로 올리는 소득 주도 성장 실험으로 경제를 주저앉혔다. 잘못된 정책 때문에 구멍 난 경제는 이제 세금 아니면 메울 길이 없어졌다.

나아가 경제 실정엔 눈감고 보고 싶은 것만 말하는 버릇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경제 중추인 제조업 생산 능력이 4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쪼그라들었는데도,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두 달치 깜짝 경제지표를 내세워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토목 사업을 벌이지 않겠다더니 토목 사업에 세금을 탈탈 털어 성장률을 끌어올리고선,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켰다고 자랑하는 뻔뻔함마저 선보였다. 일본 유력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 경제 분석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때 내건 소득 주도 성장의 '성장'이 보이지 않는다" "고용률 역대 최고라지만 늘어난 일자리는 60대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문 정부는 비판적인 국내 기사를 가짜 뉴스로 몰고 있지만, 해외 언론이 보는 눈도 국내 언론과 같았다.

최근엔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내수가 위축될 조짐이 보이자, 문 정부는 "경제가 나빠질 수 있다"며 경제 전망에 대한 기류를 바꿔놓고 있다. 지난해엔 미·중 무역 분쟁으로 나빠진 해외 요인을 경제 악화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더니, 이젠 우한 폐렴을 한국 경제 역주행의 방패막이로 삼을 태세다. 추경 카드를 내밀고 총선용 현금 뿌리기를 등장시키는 뻔한 시나리오가 눈에 보인다.

국민들을 최면 걸어 세뇌시킬 수 있다고 보면 오산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걸린 경제는 언제까지나 속일 수 없다. 진심으로 친기업·친시장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경포대 트라우마는 공포를 넘어 또다시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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