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과포'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

조선일보
입력 2020.02.12 03:16 | 수정 2020.02.13 14:11

지난 30년 국회의원 중 법조인 출신이 15~20%
법치실현 '소금' 역할보다 정치 황폐화 주범 아니었나

정권현 논설위원
정권현 논설위원
소병철 전 대구고검장은 검찰총장 후보에 3번이나 오를 정도로 잘나가는 검사였다. 검찰을 떠난 뒤에는 '전관예우'라는 말이 듣기 싫어 변호사로 돈을 벌지 않고 대학에 출강하면서 자기관리도 철저히 해 신망도 높았다. 그런 그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 대해 "추 장관의 (불공개 결정) 방향은 맞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를 포함해 더불어민주당이 총선 후보로 끌어들인 20명 중 6명이 법조인이다. 당 지도부를 법조인들이 장악해 '법조 주류당'으로 통하는 자유한국당도 이에 질세라 7명을 영입했다. 총선 때마다 나오는 '법조인 과잉 논란'이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벌써 200명 안팎의 법조인 출신이 출사표를 던졌다. 헤아려 보니 20대 국회 재적 의원 298명 중 법조인이 48명(16.1%)에 달했다. 6명 중 1명이 법조인이다. 검사 출신 17명, 판사 출신 9명, 순수 변호사 출신 22명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똑같은 경험을 가진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가 전체 의원 직업군 중에서 가장 많은 셈이다.

법조인 금배지 전성시대는 1996년 치른 15대 총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법조인 104명이 출마해 41명이 당선됐다. 당선율이 40%에 달했다. 이후로 16대 41명, 17대 54명, 18대 59명, 19대 42명이 금배지를 달았다. 의석의 15~20%를 법조인이 차지하는 '법조 국회'가 3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법치 수준은 어떻게 됐나? 법치 실현의 '소금'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정치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정치 이슈를 사법 과정으로 해결하려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2019년 여야 간 고소 고발 사건은 60건을 훌쩍 넘는다. 여야 정당과 의원이 이런 식으로 고소 고발전을 펼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법조인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상식적 판단을 내리기는커녕 위헌 소지가 있는 법률을 마구 통과시킨다. 지난해 여당이 주도한 4+1 협의체가 공수처 설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한 면면은 대부분 법조 출신이다. 이들은 각 당의 법률위원장, 법률지원단장 같은 자리를 꿰차고 고소 고발전 선봉에 나선다.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공개 비난하고, 특권 의식의 발로에서인지 검찰 소환은 거부한다. 국회법은 예사로 어기면서 판단은 사법부에 던져버린다.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 정상인가.

입법의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이것 또한 현실과 다르다. 사회적 관행이나 시장의 수요 공급을 통해 해결할 문제도 법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위헌 시비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지금은 사실상 사문화한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반대표를 던진 4명 중 법조 출신은 2명뿐이었다. 법률 해석과 적용은 몰라도 법제(法制)에는 문외한인 경우가 더 많다. 법률 제·개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시야가 좁고, 법률 지상주의에 빠져 과잉 입법을 하거나 엉터리 법률을 만들기가 일쑤다.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한다고 만들었지만 대량 해고 사태를 초래한 '시간강사 처우 개선법'이나 '주 52시간 근무제'를 넣은 근로기준법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문제는 법조인이라는 품질보증서를 달고 선거에 나서면 유권자들에게 상당 부분 먹혀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선거에 떨어져도 다시 변호사를 하면 된다'는 안전판까지 준비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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