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박인혜 "조조는 남성? 판소리는 움직이는 예술"

  • 뉴시스
입력 2020.02.11 09:35


                박인혜
박인혜
 "저보고 '적벽'에 출연하라고요? 농담하지 마세요. 하하."

소리꾼 박인혜(36)는 되물었다. 올해 25주년을 맞은 정동극장이 그녀에게 자신들의 대표작 '적벽' 출연을 제의하자 되돌려준 반응이다. '판소리와 화려한 춤의 대전'이라는 수식을 내세울 만큼 '적벽'은 판소리 '적벽가' 소리의 기개 못지않게 안무의 기상도 넘친다.

박인혜는 그간 정적인 무대를 주로 선보여왔다. 작창을 맡은 뮤지컬 '아랑가'에도 출연했지만 이 작품 역시 정적이었다. 그런데 2018년 정동극장에서 한 달간 장기 공연한 창작집단 희비쌍곡선의 '판소리 오셀로'를 통해 정동극장 관계자들이 그녀에게서 역동성을 발견한 것이다.

희비쌍곡석은 음악감독을 맡은 박인혜와 임영욱 연출로 구성된 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를 판소리로 해석한 ‘판소리 오셀로’에서 박인혜는 정적이지만 어느 공연보다 감정선이 들끓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선입견을 부수어 나가는 힘과 능력을 지닌 박인혜다. 최근 정동에서 만난 박인혜는 "다른 분들이 바라보시는 저도 저일 텐데 정작 저는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지 자문했다"고 말했다.

'적벽'은 정동극장이 2017년 창작공연 발굴 프로젝트 '창작ing'을 통해 개발했다. 마니아를 양산하며 올해까지 4년 연속 무대에 오르게 됐다. 이번 시즌 공연은 14일부터 4월5일까지 예정됐다.

우리 판소리 마당 중 장중한 대목이 많아 표현이 힘들다고 알려진 '적벽가'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적벽대전' 장면을 다룬다. 삼국지의 세 영웅 유비, 관우, 장비와 조조의 전쟁이 생동감 넘치게 구현된다. 판소리가 합창이 되고 부채를 메인 오브제로 활용한 안무는 K팝 이상으로 역동적이다.

박인혜는 국악 밴드 '이날치'의 멤버인 소리꾼 안이호과 함께 '조조'를 연기한다. 요즘 공연계에서 유행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이냐고? 원래 판소리에서 소리꾼은 남녀노소 역을 가로지르며 노래하고 연기한다. 그러니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역시 박인혜는 조조를 성별로 구분하기보다 캐릭터 자체로 분석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저도 모르게 조조를 남성성에 국한해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성적' '여성적'인 것을 경계하면서 물리적인 몸에서 오는 차이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가 큰 숙제예요."

정동극장 관계자는 "성적인 특징을 차지하고 박인혜의 호방함이 캐릭터의 면모에 잘 어울린다"고 귀띔했다.

'적벽'은 박인혜가 그간 주로 개인 작업을 많이 해왔다는 점에서 특별한 프로덕션이다. 소리꾼 배우가 많이 출연하는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노력한다는 점이 감사하다. 아울러 "고전을 다른 시각으로 깊숙하게 보는 계기가 돼 많이 배우고 있다"고 긍정했다.

그런데 이미 박인혜도 고전을 심도 있게 해석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인 그녀는 뮤지컬 '아랑가'와 판소리극 '판소리 오셀로' 외에도 '판소리 레겐트루데' '필경사 바틀비' '같거나 다르거나 춘향가' 등 판소리에 동시대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일조해온 젊은 대표 소리꾼이다. 작년 말 중국에서 희비쌍곡선 '판소리 오셀로'를 공연하는 등 해외에서도 호평을 듣고 있다.

특히 판소리 '춘향가'를 재해석하는 시리즈인 '같거나 다르거나 춘향가'는 박인혜의 유연함과 전문적인 식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판소리가 서사 전달에만 치중하지 않았나는 반성 속에 태어난 시리즈물이다.

박인혜는 판소리 서사에서 숨겨진 이면을 재미있게 들춰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예를 들어 '심청가'에서 공양미 300석은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정도 될까, '흥보가'에서 매를 대신 맞아주는 '매품'은 무엇일까 등 소리를 몰라도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들을 지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지난 7일 플랫폼창동61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산 우려로 취소된 '같거나 다르거나 춘향가 ? 타투드 온 마이 마인드(tattooed on my mind)' 공연이 그래서 더 아깝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등 더늠(소리꾼이 새롭게 만들어 넣은 소리 대목) 7개를 추가한 버전으로 춘향가의 속살을 파고들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박인혜는 잘 모르는 이들이 고색창연하게 느낄 수 있는 '판소리'에 대한 선입견을 이렇게 깨준다. 그녀는 "판소리는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그녀가 지속적으로 더늠을 만들면서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이유다.

"전통 판소리를 오래 해오다보니 지속적으로 건드려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타두드 온 마이 마인드', 즉 제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죠.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춘향가는 '열녀 이데올로기'가 주는 압박감이 있죠. 그런데 저는 예전부터 판소리를 사랑해왔고 그런 점들로 인해 혼란스런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박인혜는 자신의 것을 해나가기로 했다. 전통 판소리가 가진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인 예술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다.

"결국 문화가 남고 사라지는 것은 다음 세대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거죠. 판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어요. 다만 젊은 소리꾼들은 소리를 예술로서 수용하고 있는 건지 소비하고 있는 건지를 고민해야죠."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