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를 잃었다, 나도… 제발 구해줘" 우한판 '안네의 일기'

입력 2020.02.11 03:00

30대 여성이 썼다는 글, 中 울려

'도시가 봉쇄됐다. 무섭다. 누가 우리를 구해줄 수 있을까. 엄마 몸이 점점 안 좋아진다.'(1월 23일)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확산하는 가운데 한 네티즌이 썼다는 일기(日記)가 중국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우한에 거주하는 33세 여성이라고 밝힌 그는 '샤오항(小杭)'이라는 필명으로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반(豆瓣)'에 '우한 일기'를 연재했다. 고립된 우한에서 열흘 사이에 어머니·아버지가 우한 폐렴으로 잇달아 숨지고 자신도 감염됐다는 내용이다. 그는 2월 8일 자 일기에서 "아빠. 먼저 가서 엄마 찾으세요. 그리고 저를 기다려 주세요. 우리 함께 집으로 돌아와요"라고 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수도 베이징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안화(安華)리 주민센터를 방문, 마스크를 쓴 채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0일 수도 베이징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가 가장 많이 나온 안화(安華)리 주민센터를 방문, 마스크를 쓴 채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우한 폐렴이 확산한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관련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시 주석은 이날 베이징 디탄(地壇)의원에서 환자들 치료 상황을 보고받고, 안화리를 방문해 감염 예방 조치와 생필품 공급을 점검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AP 연합뉴스
일기가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10일 현재, 계정은 삭제됐고 1월 20일부터 올렸던 일기도 지워진 상태다. 하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판 '안네의 일기'"라며 삭제되기 전의 글을 복사해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대만 자유시보는 9일 "2002~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들리지 않았던 생생한 목소리가 인터넷에 울려 퍼지고 있다"고 했다.

글은 우한 폐렴 확산으로 인한 중국인들의 무력감, 우려와 맞물리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에는 "일기를 읽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는 글이 이어졌다. 한 중국 네티즌은 "우한의 고통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실제 중국 정부는 의료진 수천 명을 우한에 투입하고 있지만 우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9일 하루에만 확진 환자가 1921명 늘었고, 73명이 숨졌다. 우한 내 전체 확진 환자는 1만6902명, 사망자는 681명을 기록하고 있다.

샤오항의 일기
의료 시설이 부족해 우한 시민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10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우한 내 병원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중국 당국이 의료진도 없는 비즈니스호텔에 경증 환자들을 가둬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한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호텔·학교 130여곳에 집중 격리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통상 증세가 심하지 않은 의심 환자 등이 수용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숙부를 격리시설에 보냈던 주부 왕원쥔(33)은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내게 전화를 걸어 '의사도 간호사도 없는 비즈니스호텔에 갇혔다'고 말했다"며 "마스크는커녕 산소공급장치나 소독액도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왕씨의 숙부는 상태가 악화돼 호텔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증세가 있어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이뿐이 아니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우한에 사는 중년 여성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징을 치며 "폐렴에 걸린 어머니를 구해 달라"고 외치는 동영상이 큰 화제가 됐다. 중국 매체인 남방도시보에 따르면 리리나라는 이 여성은 어머니가 열이 나자 지난 5일 어머니와 함께 진료소를 찾았다. 우한 폐렴 검사에서 '약(弱)양성' 반응이 나왔다.

리씨는 "병원 측에서 2차 검사에서 확실한 양성이 나와야 입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머니가 이미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며 "병원, 마을 행정실 등 연락할 수 있는 곳에는 다 연락을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리씨가 베란다에서 호소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자 리씨의 어머니는 지난 9일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검사가 정확하지 않으면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상태가 나빠지거나 또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 중국 매체 남방주말은 "확진자 가운데 처음 6차례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가 7번째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사례가 있다"고 보도했다.

10일 우한시에 따르면 우한시는 31개 병원에 총 1만300개 병상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 중 빈 병상은 378개뿐이다. 우한에서만 하루 2000명 가까운 추가 확진 환자가 쏟아지자 지난 5일부터 우한 시내 체육관, 전시장 등에 매트리스를 깔아 경증 환자를 위한 임시 병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임시 병상을 1만 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0일 오후 베이징시 디탄(地檀)병원, 차오양(朝陽)구 한 주민센터 등을 방문해 방역 작업을 지시했다고 중국 관영 매체가 보도했다. 시 주석이 우한 폐렴 사태가 시작된 후 현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시 주석이 방역 현장에 나서지 않자 일부 외신들은 "시 주석이 방역 책임을 리커창 총리에게 맡기고 뒤로 숨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리 총리는 지난 1월 27일 우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우한에 가는 대신 이날 베이징에서 우한을 화상통화로 연결해 우한 의료진을 격려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소셜미디어 계정은 시 주석이 마스크를 쓴 채 베이징의 주민센터에서 체온을 측정하는 사진 바로 위에 우한으로 달려간 의료진들을 칭찬하는 논평을 실었다가 해당 논평을 삭제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우한 폐렴으로 인한 중국 내 확진 환자는 전날보다 2974명 증가해 4만명을 넘어섰다. 사망자도 전날보다 96명 증가한 909명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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