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역에 정치적 고려를 왜 하나

조선일보
  •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감염병 정책·규제 개선위원장·고려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
입력 2020.02.11 03:16

감염원 차단 방식으로는 한계
中 확진자 많은 곳 입국 제한하고 동네 병원서부터 감시·진단해야
방심하면 큰 위기 맞을 수 있어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감염병 정책·규제 개선위원장·고려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감염병 정책·규제 개선위원장·고려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
우려가 현실로 닥치고 있다. 중국 우한발(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내로 들어와 가족과 접촉자 위주로 퍼지고 있다. 확진자들과 접촉한 이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 교회·회사·아파트 등 어디서 옮을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어도, 확진자 행적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어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해서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재 싱가포르가 그런 상황이기에 지역사회 전파 단계로 방역 체계를 올렸다. 한국은 확진자가 27명이다. 4만명이 넘는 중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로 보일지 모르겠다. 숫자에 안심해선 안 된다. 27인이 이제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정부는 국내 첫 감염자가 나온 이후 방역에 실책과 실기를 거듭했다. 접촉자 기준을 느슨하게 하여 밀접 접촉자를 놓쳐 2차 감염의 빌미를 제공했다. 무증상 내지 경미한 증상 상태에서도 전염이 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음에도 증상 발현 후 접촉자 관리에 치중했다. 확진자 이동 동선과 행적 공개도 지연됐고, 불투명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 대상도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우한, 중국, 중국 밖 발생지 등 새로운 출처의 감염자가 나올 때 뒤늦게 바꿨다. 메르스 때보다 방역 인프라는 좋아졌다지만 방역 행정은 메르스 때를 연상시킨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 얼마나 확산됐는지, 확산될지 알 수가 없다.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도 없다. 발생 초기라서 그렇겠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 검사를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확진자 발생 밀집 지역부터라도 중국이나 접촉자 동선과 전혀 상관없는 발열 환자들에게도 검사를 해봐야 한다. 그래야 지역사회에 퍼진 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

지금은 지역사회 전파 예방과 대응을 위해 방역 체계 재편이 시급한 과제다. 지금까지 해온 방역, 감염자가 새로 발견되면 접촉자를 찾아내 격리하는 감염원 차단 방식(reactive approach)으로는 지역사회 전파를 막을 수 없다. 확진자의 동선을 매번 뒤쫓아 가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의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 수준에서의 조기 진단과 감시 체계 운영이다. 감염원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서는 선제적(proactive) 대응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하여 중앙질병관리본부 중심의 방역 시스템을 개편하고, 동네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과 밀착형 인프라를 형성해야 한다. 발열 증상이 보여 동네 의원을 찾은 환자들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게 한 후 일단 자가 격리를 권하고, 결과 여부에 따라 다음 단계가 이뤄지도록 해나가야 한다.

지역사회 전파 감시, 조기 진단 및 격리는 검사 가능한 보건소와 대형 종합병원만으로는 효율이 떨어진다. 지역사회 일차 의료를 통해 감시와 진단이 효과적으로 일어나야 지역사회 전파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중국으로부터의 바이러스 유입을 줄이기 위해서는 입국 제한 지역 확대가 필요하다. 방역에 정치적 고려를 왜 하나 싶다. 최소한 중국 내에서 확진자가 많이 생긴 곳이라도 입국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 방역 실기와 순간 방심은 대한민국에 엄청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내일이라도 당장 해외여행과 기존 확진자와 전혀 무관한 신규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 오늘부터 대응 체계를 짜야 한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민관합동 긴급대응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지역사회 전파 관리와 예방책을 지금 시행해야 한다. 관(官)과 민(民)이 합쳐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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