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후베이성만 입국 금지, 안 하느니만 못한 조치"

조선일보
  •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입력 2020.02.11 03:00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우한폐렴' 기고

서울의료원 응급의료센터
대한의사협회 제공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이른바 '우한 폐렴'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30일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고, 각 국가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으로부터의 전면적 입국 금지를 시행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골든타임 지키려면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해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달 26일 정부에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고려할 것을 촉구했다.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10일 현재 입국 제한 조치를 중국 후베이성 방문자로 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는 안 하느니만 못한 조치다. 중국 내 확진 환자의 성(省)별 분포도를 보면 후베이성 외에 광동성·저장성·후난성·장시성 등에서도 상당수 환자가 발생한 상태다.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로 빠져나간 인원도 적지 않다. 후베이성만 대상으로 한 입국 금지는 감염 전파 차단의 실효성이 없다. 대상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 환자 유입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위기경보단계 '심각'으로 격상 필요

위기경보 수준은 '경계'에서 '심각'으로 즉시 상향해야 한다. 현 상황은 질병관리본부가 설정한 '심각'의 기준인 '국내 유입된 해외 신종감염병의 지역사회 전파 또는 전국적 확산'에 정확히 부합한다. 자국민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는 차선이 아닌 최선을 택해야 하며, 철저히 매뉴얼대로 대응해야 한다. 사례 정의(감염병 감시·대응·관리가 필요한 대상을 정의하는 것)도 급변하는 상황을 빠르게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례 정의가 2~3차 감염자가 나오는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환자가 계속 늘어나고 대혼란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는 관련 지침 등의 개정 작업을 전문가와 진행해야 하며, 모든 관련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해야 한다.

마스크 등 기본 방역용품 원활히 공급돼야

방역 당국은 일선 의료기관이 감염병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보호 마스크와 손 세정제, 의료기관 소독·방역 물품 등의 지원도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특히 감염병과의 싸움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에게 마스크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전쟁에 나선 병사에게 무기가 지급되지 않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마스크 공급을 원활히 하고 적정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마스크를 하루에 1000만 개씩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국민에게 충분히 공급한 이후여야 한다.

의심 환자를 향한 비난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

환자가 본인 증상에 따라 스스로 1339 콜센터에 신고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이 필요한 일이다. 전문가가 아닌 환자는 자기 증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따른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최근 대도시를 활보한 확진 환자에 대한 비난 여론이 조성됐는데, 이는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염된 줄 모르고 돌아다녔던 환자가 주위 시선이 두려워 음지로 숨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확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보다, 망설임 없이 신고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9일 협회 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본부 및 종합상황실'을 개설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왼쪽에서 세번째)과 관계자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9일 협회 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본부 및 종합상황실'을 개설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왼쪽에서 세번째)과 관계자들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의료전문가 조언 따르며 철저한 예방관리

의협은 지난달 29일부터 협회 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책본부 및 종합상황실'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전문가 조언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 국민과 정부 관계자에게 의학적 의견과 정보를 전하고 있다. 상담 문의는 전화(1566-5058)로 하면 된다. 또, 의협이 제작한 'KMA 코로나 팩트' 애플리케이션이나 홈페이지(coronafact.org)에서 최신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을 위협할지 모른다. 하지만 2015년 메르스에 이어 이번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며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응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 제2의 메르스, 제2의 코로나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책·제도적으로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항들을 제안한다.

보건복지부,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해야

2015년 발발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사회 전 분야에 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보건과 복지를 한 부처가 담당하는 비(非)효율적인 조직 체계로 인해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 보건 당국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등 한계를 드러냈다. 지금도 보건복지부는 보건 의료와 복지 정책을 모두 관장한다. 보건의료정책은 다양한 부서에 산재돼 있고, 종합적인 정책 조정 기능은 부재하다. 보건의료정책은 비전문가들이 결정하는 것이 현실이다. 행정편의적인 관행으로 인해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위한 정책은 후순위로 밀린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직결되는 '신종 감염병 위기상황 종합관리' 예산도 2018년 129억원에서 크게 줄었다. 지난해에는 42억원, 올해는 48억원이 배정됐다. 전문 인력과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는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수임에도 우리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국가 백년지계 중 하나인 보건의료정책을 국가의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한다. 보건의료 담당 부처는 전문 인력으로 구성돼 있고 많은 예산을 확보해 운영된다.

현행 정부조직법상 제26조에 명시된 보건복지부를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하고, 보건복지부가 관장하는 사무를 보건의료분야와 사회복지분야로 나눠 분야별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보건부 독립과 함께 응급의료체계·감염관리·재난의료시스템 개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해 환자의 병원 이용 문화를 개선하고, 의료기관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부터 일선 보건소에 이르는 공공의료체계를 개편해 공공의료 기능과 역할도 혁신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질병관리청으로 개편 필요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권역별 실행 조직도 갖추지 못했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다른 부처를 지휘할 권한도 없다.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충하기 어렵고,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비전문가인 행정 관료의 의사 결정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국가 기관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보건의료 특성상 보건의료정책은 전문성이 확보된 조직에서 전문가 지도에 따라 수립·시행돼야 한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보건의료 정책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할 전문 조직과 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개편하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같이 신속한 대응체계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질병관리청의 예산과 인사권을 독립시키고 감염병 발생 시 격리·폐쇄 등 행정감독권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권역별로 질병관리지청을 설립해 권역 단위의 대응이 가능한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보건소의 관리·감독체계도 보건복지부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보건소 조직의 운영·인사·재정 등 일반 행정은 행정안전부가 감독한다. 보건시책이나 사업계획 등은 보건복지부의 지도를 받는다. 이 같은 이원적 조직 체계로 인해 보건복지부의 정책 의도가 집행기관에 정확히 연결되기 어렵다. 보건소가 지역 보건당국 본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기존 보건소 업무도 재검토해야 한다. 일반진료기능은 폐지하고, 감염병 예방과 격리환자 관리, 감염 확산 시 의심 환자 선별진료 등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규제 위주의 감염예방관리 정책은 미봉책

마지막으로 국가 감염예방관리 정책의 방향은 '규제' 중심에서 '지원' 중심으로 전향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의료기관의 자율적 감염예방관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일선 의료기관의 의료진은 지금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신종 감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도 과도한 피로와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 지쳐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얼마 전 대통령이 신종 감염병 사태와 관련해 의료기관 문책을 언급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과도한 통제나 비판을 하기보다는 정부와 의료계, 국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신종 감염병 사태를 조기 종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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