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의 세계 경제 읽기] '역병의 정치학'… 세계 패권 경쟁에 뜻밖의 '게임체인저'

조선일보
  •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前 금융위원장
입력 2020.02.10 03:13

中 1분기 성장률 작년 6%→올해 2% 전망, 올 한 해 4%대 추락 경고
G2 위상 흔들, 중국몽·일대일로 좌초… 美와 패권 경쟁 완패 가능성
1986년 체르노빌 대참사, 5년 후 소련 공산 체제 붕괴 전조
韓 경제 2% 성장 쉽지 않아, '중국 올인' 전략 시급히 수정해야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前 금융위원장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前 금융위원장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Tobin)의 말로 유명하다. 투자를 분산하고 다변화해야 리스크(위험)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를 새삼 떠올리는 이유는 '차이나 리스크' 급증 때문이다. 우한 폐렴으로 불거진 중국 변수가 국제 경제와 정치 질서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기 회복의 훈풍으로 시작한 2020년 세계 경제는 한순간 초대형 돌풍을 만났다. 사망자가 2003년 사스를 넘어 악화일로에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인명 피해와 경제적 파장을 넘어 중국 통치 체제까지 흔들면서 G2(미·중)가 벌이는 글로벌 패권 다툼의 '게임체인저'(판도를 바꾸는 요인)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역병의 정치학' 제하의 특집 기사로 1986년 체르노빌 대참사 당시 소련 정부의 늑장 대응과 위기관리 실패가 5년 후 소련의 공산 체제 붕괴와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 해체의 전조였다는 역사를 재조명할 정도다.

과거와 다른 중국 경제 비관론… 구조적 취약성·경기 하향 추세에 근거

우한 사태로 빚어진 주식시장 공포로 지난주 2월 3일 상하이지수가 8% 폭락해 시가총액 500조원이 날아가면서 중국발 블랙 먼데이를 기록했다. 다행히 중국 당국의 긴급 자금 200조원 수혈,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 그리고 미국 시장의 강한 반등에 힘입어 투자 심리는 일단 진정되는 모습이다. 다만 위안화 약세 여파로 위안화와 동조화가 심한 '위안화 블록'의 원화는 동반 약세와 큰 변동성을 보인다. 문제는 금융시장 불안보다 치명적인 실물경제 피해다.

중국의 올 1분기 성장률이 전년 동기 6%에서 2%대까지 폭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국제 신용 평가사 S&P 등은 올해 중국 성장률의 4%대 추락을 경고하고 있다. 중국 경제 비관론은 과거와 다른 구조적 취약성과 경기 하향 추세에 근거한다. 2003년 사스 전후 중국은 초호황기로 2003년 10%, 2007년 무려 14% 성장을 기록한 경기 확장기였지만 지금은 구조적 장기 침체를 우려하는 경기 위축기다. 활력이 넘칠 때는 내외부 충격 흡수 여력이 컸지만 과중한 국가 부채와 금융 부실 등 구조적 문제로 경제 체력과 체질이 나빠진 오늘날 쇼크를 감내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물가 상승과 성장 정체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으로 정책 수단이 더욱 제한적인 상황이다.

세계 주요국 주가 상승 하락률 그래프

신종 코로나의 전 세계 파급 효과 또한 과거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세계 6위였던 중국 경제 규모가 2위로, 세계 GDP 비율은 16%(2019년 기준)로 4배 뛰었다. 세계 1위 해외 관광 지출 국가인 중국은 세계 최대 수출국이자 세계 2위 수입국으로 국제무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우한(武漢) 일대는 교통과 산업 요충지로 포천 500대 기업 절반의 생산 설비가 모여 있는 제조업 허브다. 신종 코로나는 글로벌 생산 공급망을 마비시켜 자동차, 전자를 포함한 핵심 산업에 치명타를 주고 소비·투자 냉각으로 악순환을 키운다. 지난해 3%를 기록한 세계 성장률은 2.5%대 하락이 점쳐지고 있다.

한국 경제 최대 피해 우려… 중국 눈치만 봤다간 큰 낭패 볼 수 있어

현 사태 수습이 늦어지면 중국 정치 시스템과 리더십 위기로 번질 소지가 크다. 정보·언론 통제와 초기 대응 실패에 따른 국민 불신과 민심 이반으로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홍콩 반정부 시위 확산과 대만 독립파 차이잉원 총통 압승에 이어 우한 사태로 시진핑 주석의 통치 체제와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G2 위상이 흔들리면 중국몽(中國夢), 일대일로 등 핵심 전략도 좌초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반면에 역대 최장기 호황의 탄탄한 경제와 강세장을 이어가는 주식시장에다 탄핵 부담까지 벗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재선 청신호로 더욱 공고해지는 모양새다.

한국은 우한 바이러스 당사자인 중국 외의 최대 피해국으로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GDP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은 0.35%포인트 하락해 주요 24국 가운데 낙폭이 가장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악재가 겹쳐 역성장이 우려되는 홍콩보다도 충격이 더 크리라는 예상이어서, 영향이 미미한 미국·인도 등과 대조를 이룬다. 정부의 금년도 성장 전망치 2.4% 달성은 물 건너가고 있고 사태 추이에 따라 2% 지키기도 만만치 않다. 경제 분석 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이미 2.0%로 낮췄다.

'2S'라는 위기 대응 기본 원칙이 있다. 신속하고(speedy) 충분하게(sufficient) 대처하라는 뜻인데 금융 위기뿐 아니라 전염병 대책 등 모든 위기관리, 특히 초동 대처에 적용될 지침이다. '선제적이고 과감한 대응'이 핵심이다. 중국과 함께 한국도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미국과 일본은 물론 베트남이나 필리핀보다 낮은 수준의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를 뒤늦게 내리면서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국 눈치를 살핀다는 비판을 받는다.

앞서 언급한 토빈 교수의 충고는 경제든 외교든 과도한 집중을 피하는 것이 최선의 위험 관리라는 의미다. 현 정부의 '중국 올인'에 대한 위험 경고이자 중국 의존도를 낮춰 국가 리스크를 줄이라는 메시지다. 비상사태를 맞아 경제정책 기조 대전환과 함께 국가의 대외 전략 리셋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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