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 긴 드립포트… 나비넥타이 노인은 커피를 내렸다

조선일보
  •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20.02.08 03:00

[아무튼, 주말- 한은형의 애정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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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같은 원두를 쓰더라도 만드는 기구와 방식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다만 맛이 커피의 전부는 아니다. 맛보다는 분위기다. 분위기보다는 사람이다. 영화 ‘카페 뤼미에르’에는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한 노인이 커피를 주문받아 만드는 카페가 나온다. 드립커피다. 노인의 묵묵하고 정중한 태도가 그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특별하게 만든다. /게티이미지뱅크·영화 캡처
커피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카페 뤼미에르'를 보고 나서였다. 대만 사람인 허우샤오시엔이 아사노 다다노부 같은 일본 배우들과 찍은 영화인데, 인상적인 카페가 나왔던 것이다. 카페 이름이 '카페 뤼미에르'였는지 아닌지 지금으로서는 기억나지 않지만 커피를 내려주는 사람이 노년의 남자였다는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어서였기도 했지만, 태도 때문에 그랬다. 뭐랄까. 묵묵하고 정중했다. 그때까지 내가 보아온, 커피 산업에 종사하는 젊은 사장님들과는 많이 달랐던 것이다.

카페 뤼미에르에서의 커피는 드립커피였다. 마스터는 아마 부리가 긴 드립포트로 동심원을 천천히 그리며 커피를 추출했을 것이다. 어쩌다 집에서 드립커피를 마실 때가 있다. 커피머신용 캡슐이 떨어졌을 때다. 하지만 그렇게 동심원을 그리며 정성을 기울여본 적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없다'기보다는 '못한다'에 가깝다. 동심원은 아무나 그리는 게 아니다. 가늘고 긴 물줄기를 포트에서 뽑아내지 못하고 왈칵 물을 쏟아 버린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주 조금씩 물을 떨어뜨리는 거다. 원두를 갈고, 드리퍼에 필터를 펴서 넣고, 물을 천천히 붓고 하는 일이 견딜 수 없이 귀찮아질 때쯤 다시 머신용 캡슐을 주문한다. 아니면 모카포트를 꺼내거나.

지금도 모카포트로 커피를 끓여 마시고 있다. 캡슐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내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로 고른, 제주의 남의 집에 있다. 호스트는 드립커피용 도구와 모카포트를 준비해놓았고, 나는 모카포트를 골랐다. 그런데 이 도구로 추출된 에스프레소는 지나치게 쓰다. 집에서 사용하는 모카포트처럼 손에 익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카포트를 사게(그리고 쓰게) 된 것은, 밀라노에 있는 파베르(라고 하자)네 집에 머문 뒤였다. 역시나 에어비앤비에서 위치를 보고 고른 집이었을 뿐인데, 미술 작품인 줄 알았던 꽤 거대한 플라스틱 조형물이 알고 보니 쓰레기 분리수거함인 그런 집이었다.

거기는 뭐랄까, 취향의 적층지대 같은 곳이었다. 천장과 벽과 가구는 물론 소파의 위치, 러그를 깐 방식, 자잘한 소품 하나하나에서 주인인 파베르가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문적인 예술 교육을 받은 사람 이상일 것인데, 화상(�商)은 아닌 것 같고, 디자이너는 또 아닌 것 같고, 파베르의 직업은 대체 무엇일지 나는 궁금했다. '밀라노 리나센터에서 일한다' '일주일에 이틀 일한다'는 것을 파베르가 알려주었고, 나는 마음대로 그가 리나센터의 아트디렉터라고,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자신의 브랜드를 차리기 전에 했던 그 일을 한다고 단정 지어 버렸다.

파베르에게 물어 모카포트를 샀다. "현관을 등지고 오른쪽 방향으로 조금 가면 미용실이 있는데, 그 옆 가게야. 작고 정말 오래된 가게. 거기서 너는 네가 원하지 않던 것들까지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라고 파베르는 말해주었다.

정말, 그랬다. 파베르의 예언대로 나는 그때까지는 필요한지 몰랐으나 그 순간부터 필요해진 것들까지 샀다. 그리고 간절히 필요로 했던 모카포트를 샀다. 불에 여러 번 달구어졌다 식어 생겨버린 약간의 그을음과 무지갯빛 얼룩으로 아우라가 더해진 파베르네 모카포트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제주의 호스트가 놔둔 모카포트로 추출한 커피에 물을 타 마시고 있다. '롱블랙'이다. 롱블랙은 간단히 말해 뜨거운 물에 에스프레소 샷을 탄 커피다. 아메리카노와 뭐가 다르냐 싶으시겠지만 먹는 사람이 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다르다. 지금은 없어진, S백화점에 있던 카페에서 롱블랙을 팔았다. 우연히 갔다가 롱블랙을 마시게 된 후로 롱블랙을 마시기 위해 그곳을 드나들었다. 롱블랙을 파는 곳이 거기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는 말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십오년 전쯤에는 그랬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백화점의 그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 더블샷과 뜨거운 물이 담긴 포트, 빈 잔을 함께 내주었다. 고민했던 것 같다. 빈 잔에 에스프레소를 먼저 부을 것인지, 물을 먼저 부을 것인지. 나는 물을 먼저 부었다. 그러고는 에스프레소를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언젠가 보았던 뉴질랜드가 배경인 영화에서 롱블랙이 그곳의 커피 관습임을 알게 되었다. 여자 주인공이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바리스타는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숏블랙? 롱블랙? 플랫화이트?" 이 세 가지가 뉴질랜드 커피의 기본형인가 싶었다. 숏블랙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으나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롱블랙보다는 물을 덜 타면 숏블랙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물을 적게 타는 편이니까 내가 마시는 커피를 롱블랙이 아니라 숏블랙으로 고쳐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고.

여기까지 쓰다가 누군가가 커피에 대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처럼 한 감독이 여러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도 좋고, '그들 각자의 영화관'의 방식처럼 여러 감독이 '한 도시와 하나의 커피'에 대해서도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도시와 커피에 대한 영화를 보고 싶다. (스타벅스의 발상지인) 시애틀의 아메리카노, 교토의 드립 커피, 멜버른의 플랫화이트, 아일랜드의 아이리시 커피, 토리노의 비체린, 나폴리의 에스프레소,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도시와 잘 모르는 커피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과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과 카페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영화를 말이다.

척박하고 쓸쓸하고 유난히 커피가 맛이 없는 베를린이 나와도 좋을 것이다. 맛이 커피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맛보다는 분위기고, 분위기보다는 사람이다. 커피를 애정하지만, 나는 사람을 더 애정하는 사람이니까.

베를린에서 지낼 때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커피를 내려주는 여자의 아침 인사가 산뜻해서 그곳만 간 적이 있었다. 맛은 정말 별로였는데 말이다. 나는 그걸 어느 책에서 이렇게 표현했었다. "'모르겐'이라고 여자가 아침 인사를 하면, 그녀가 따뜻한 지방에서 머금고 온 햇살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제주에는 무려 '식초커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오래된 목욕탕에서 주인 할머니가 타준다는 것을, 오직 새벽에만 그나마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제주 잡지에서 읽었던 것이다. 레시피를 적어두었다. 무려 '땀을 뺀 후의 깊은 갈증을 한 방에 날려줄 비밀의 레시피'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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