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40] 온전한 '나'로 살아가려면

입력 2020.02.07 03:14

개성 중시하는 현대사회… '진정한 나로 살기'가 과제
北歐 르네상스 巨匠 뒤러, 추한 자아와도 직면하며 노쇠한 육체까지 그려내

곽아람 문화부 차장
곽아람 문화부 차장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올리비아 콜먼에게 TV 드라마 부문 여우 주연상을 안겨준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생애를 다룬다.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나는 누구인가' 묻는 한 여성의 분투기이기도 하다.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25세에 왕위를 승계하게 된 엘리자베스에게 할머니 메리 왕비는 말한다. "엘리자베스 마운트배튼(남편 필립의 성)은 이제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다른 인물로 대체되었어. 두 엘리자베스는 자주 충돌할 거야. 그렇지만 이 사실은 분명해. 왕좌가 이겨야만 한다는 거야. 언제나 이겨야만 해."

어디 여왕뿐이랴.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충돌을 겪는다. 누구에게나 직장에서 쓰는 '가면'이 있을 것이다.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미덕으로 여기던 전통 사회에서는 공적 자아를 갈고 닦아 내세우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개인의 고유성을 중시하는 요즘은 '진정한 나로 사는 것'을 삶의 당면 과제로 여기는 추세다.

서구에선 "내 모습 그대로, 나답게 출근하라"는 말이 유행이고 '나답게 사는 법'에 대한 심리학 서적이 쏟아진다. 미국의 융 심리학 전문가 제임스 홀리스는 말한다. "신의 뜻대로 우리는 하루하루 더욱 더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누구나 '나답게' 살길 꿈꾸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쉽지 않다. 가면이란 상처 입지 않기 위한 방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자화상'. 28세 때인 1500년에 그렸다. /뮌헨 알테 피나코텍 소장
뉴욕의 대학에서 알브레히트 뒤러(Dürer·1471~1528)에 대한 수업을 한 학기 들었다. 독일 화가 뒤러는 알프스 이북의 '북유럽 르네상스' 선구자로 불린다. 1500년 그린 자화상이 가장 유명한데 '화가란 이름 없는 장인(匠人)에 불과하다'는 당시 인식을 뒤엎고, 예수를 연상시키는 정면관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름 이니셜 'AD'를 거침없이 써 넣었기 때문이다.

뒤러 연구의 권위자인 80대 노교수는 어느 날 수업에서 뒤러의 모든 자화상을 연대순으로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금(金) 세공사의 도제 생활을 하게 된 13세의 뒤러가 그린 첫 자화상에서 시작해 자신을 '댄디'로 그린 청년기 자화상들과 그 유명한 1500년의 정면상…. 우울한 눈빛의 소년이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년으로 성장해 가며 겪었을 삶의 궤적이 감동적이라 생각하는 순간 슬라이드는 어느 새 병들고 늙어 쇠락한 육체의 화가가 서글픈 표정으로 거울 속 자기를 응시하는 중년과 말년의 자화상으로 넘어가 있었다.

"당시 관점에서 뒤러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겨졌다.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아름다운 사내. 누군가는 그를 아름다운 말(horse) 같다고 하기도 했다."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생각했다. 예술가로서 뒤러의 성취는 가장 추한 시기의 자신까지도 직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구나. 자아의 추악한 면면까지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범인(凡人)과는 다른 예술가의 속성이니까.

대표작 1500년 자화상에 뒤러는 적었다.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불멸의 색채로 나 자신을 그려냈다." 인생의 최전성기인 그날 이후 그는 계속 노쇠했지만, 하반신 누드도 꺼리지 않고 스스로를 화폭에 담았다. 융은 말했다.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이기보다 온전히 '나'이길 원했던 예술가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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