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KBL 장준혁 심판 "억울해서 잡은 휘슬이 1000경기"

  • 뉴시스
입력 2020.02.05 09:29


                정규리그 1000경기 출장 기록 달성한 장준혁 심판
정규리그 1000경기 출장 기록 달성한 장준혁 심판
1997년 2월2일 수원실내체육관.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과 안양 SBS(현 안양 KGC인삼공사)의 경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데뷔전이다.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 심판은 휘슬을 물고 정신없는 40분을 보냈다. 선배들의 지시에 따르며 선수와 공의 움직임에 모든 걸 집중했다.

"막내였다. 솔직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선배 심판들의 지시에 집중하며 내 몫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자 프로농구 KBL의 장준혁(50) 심판이 역대 최초로 정규리그 10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장 심판은 지난 2일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DB와 안양 KGC인삼공사의 경기를 통해 통산 정규리그 10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역대 처음이다. 장 심판은 1997년 출범부터 함께한 베테랑 심판으로 플레이오프 107경기, 챔피언결정전 46경기, 올스타전 5경기를 운영했다. 남아있는 유일한 원년 심판이다. 보수적인 농구장에서 비선수 출신으로 입지를 탄탄히 했다.

1000경기 출장을 앞두고 홍기환 심판부장은 "준혁아, 너 오늘 1000번째 경기"라고 넌지시 알려줬다. 홍 부장은 "알고 배정한 것은 아닌데 준혁이의 심판 데뷔 날짜가 2월2일이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공교롭게 1000번째 경기도 2월2일이라 본인에게는 의미가 더했을 것 같다"고 했다.

4일 KBL센터에서 만난 장 심판은 "심판은 매 경기 큰 부담을 가지고 코트에 선다. '절대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무사히 잘 끝났으면'이라는 생각뿐이다. (1000번째 경기를 알았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부담이 좀 더 된 경기였던 것 같다"고 했다.

장 심판이 '코트의 포청천'이 된 이유는 흥미롭다. 농구를 좋아해 대학교에 입학해 동아리 농구를 즐기던 장 심판은 억울한 판정 때문에 심판이라는 직업에 흥미를 가졌다.

장 심판은 "대학 시절 대회에서 우리 동아리가 졌다. 판정 때문에 졌다는 억울한 생각 때문에 심판과 판정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내가 심판이라는 것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때부터 심판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부산동아대 체육학과 시절에 대한농구협회에서 실시하는 심판강습회에 매년 참가했다. 교생 실습 때문에 시간이 여의치 않자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군인 시절에는 강습회 일정에 맞춰 휴가를 신청했다. 이후 프로농구 심판이 되고선 시즌 일정 때문에 신혼여행도 가지 못했다.

장 심판은 "결국 심판도 누구보다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유일한 원년 심판으로 심판상을 6차례 수상하는 등 풍부하고 훌륭한 경력을 쌓았지만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2003~2004시즌 창원 LG와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의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평생 잊지 못할 실수를 범했다.

4쿼터 종료 막판 바비 레이저(오리온스)가 팁인으로 득점에 성공해 오리온스가 5점차로 달아났지만 장 심판은 '실린더 룰'을 적용해 레이저의 득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이 림 위에 있을 때 건드릴 수 없다는 규정이다. LG가 역전승을 거뒀다.

결과적으로 이 판정은 오심이었다. 장 심판은 후폭풍 속에서 두 시즌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장 심판은 "나의 가장 큰 실수이자 오심이었고,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일 수밖에 없다"며 "그 일이 있고, 심판을 그만뒀다. 큰 실수를 했는데 코트에 다시 서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느냐. 꿈을 접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대학원에 들어갔다. 부인과 함께 짐을 쌌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기억했다.

미국프로농구(NBA) 출신으로 KBL 심판 자문역과 지도를 맡았던 테리 더햄이 연락을 취했다. "너 이제 심판 안 할 거냐. 그동안 쌓아온 게 있는데 너무 아깝다"며 복귀를 권했고, NBA 서머리그에서 휘슬을 잡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평소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장 심판은 10개 구단의 동의하에 징계 경감과 함께 다시 코트에 설 수 있었다. 장 심판은 "개인적으로 구단과 김진 감독님(당시 오리온스 감독)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이 컸다. 밖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지금도 죄송한 마음은 여전히 가슴에 품고 있다"고 했다.

심판부장으로 있던 2015~2016시즌에는 경기 도중 종아리 근육 파열로 퇴장한 기억도 있다. "심판이 현장에서 다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 부끄러웠다. 후배들에게 코트에서 넘어지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내가 너무 큰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심판은 자기관리가 선수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터뷰 직전까지 KBL센터 지하에 있는 피트니스센터에서 땀을 흘렸다. "오후 2~4시는 러닝, 웨이트트레이닝이 필수다. 비시즌에도 심판들은 쉬지 않고 철저히 체력 관리를 해야 한다. 1~2살 더 먹으니 몸이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담배는 입에 댄 적이 없고, 술은 오랫동안 하지 않다가 최근 가볍게 시작했다.
코트 밖 생활도 중요하다. 심판은 특정 구단이나 선수와의 친밀함을 차단하기 위해 경조사를 알리지도, 참석하지도 않는다. 냉정하지만 조금의 오해도 살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철칙이 확실하다.

장 심판은 "김현준 삼성 코치가 돌아가셨을 때, KBL 직원 전체가 참석했다. 그리고 심판부장을 맡았을 때, 이상민 삼성 감독의 부친상이 있었다. 딱 2번 경조사에 참석했던 기억이다"고 했다.

딸이 둘이다. 큰딸이 대학교 4학년, 작은 딸은 대학교 입학 예정이다. 모두 농구를 안 본다. 원래 농구를 즐기던 어머니와 부인도 보지 않는다.

장 심판은 "부인이 체육관에 왔다가 심판 욕을 하는 관중들을 본 이후로 체육관에 오지 않고, 보지 않는다. 두 딸도 욕먹는 아빠를 알기에 자연스레 농구와 멀어졌다"며 "메이저리그 심판 중에 한 분이 한 '심판이 올바르게 판단한 것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지만 오심은 작은 하나라도 기억한다'라는 말을 깊게 받아들였다. 심판이 욕먹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심판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구에서 작은 상점을 하는 아버지만 농구 중계를 틀어놓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선을 지키는 팬들의 비판과 비난은 심판들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근거 없이 가짜뉴스나 다름없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감독님이나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감독님들의 항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팀의 대표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며 "심판과의 소통, 신뢰를 통해 선을 넘지 않는 항의였으면 한다. 결국 신뢰의 문제다. 그래서 심판들이 감독님, 선수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감독, 선수, 팬들을 모두 존중하면서 존중받을 수 있는 심판이 되는 게 중요하다. 나부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보탰다.

장 심판은 최초 1000경기 출장에 대해 "큰 의미는 없다. 원년부터 했기에 개근상을 받았다는 생각이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나이 제한은 없지만) 능력과 체력이 된다면 55세까지 심판을 하고 싶은 게 소망이다"며 "평범하게 심판 생활을 마무리하고, 심판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국제농구연맹(FIBA) 인스트럭터 라이센스를 따고, NBA에서도 교육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과 새로운 배움을 통해 좋은 심판 지도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심판을 하면서 가진 철학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는 "판정은 항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감독, 선수와 소통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코트 밖에서도 행동은 항상 겸손하고, 성실해야 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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