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깨시민' 차라리 臣民이라 칭하라

입력 2020.02.04 03:10

깨어있는 시민이라더니 주군의 命에 무조건 충성
민주주의 위기 빠뜨리고 우리 미래 위협하는 존재로

이한수 문화부 차장
이한수 문화부 차장
요즘 '깨시민'이란 말은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명색은 깨어있는 시민이란 뜻인데 실제 행태는 주군에게 충성하는 신민(臣民)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직전 "깨어있는 시민의 단결된 힘이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깨시민'이 지금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변질 과정을 겪고 있다.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 말하는 시민은 도시(都市)에 사는 주민을 뜻하는 게 아니다. 시민이란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의 주체로서 '자유롭고 자율적인 개인'(강원택 '시민이 만드는 민주주의')을 말한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시장(市場)에서 권력에 구속받지 않고 생산·소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시민의 상대어는 군민이나 읍민이 아니라 권력에 예속되고 얽매인 신민이다.

이른바 '깨시민'은 지금 신민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구속 직후 "저와 제 남편을 기억하시고 격려해주신 그 손글씨를 통해 수많은 '깨시민'의 마음을 전달받았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시민이라고 해서 팬레터를 보내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넉 달여 동안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에서 "정경심 교수 사랑합니다" "우리가 조국이다"를 외치던 '깨시민'들이 설 직전 갑자기 집회를 중단했다. 이유가 기막히다. 주군이 명했다는 것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군에겐 '엄지 척'이다. 주군이 부르면 무조건 달려간다. 깨어있는 시민이라더니 스스로 '문파'라 부르는 상상의 공동체에 충성을 바치는 신민으로 전락했다.

한때의 시민단체는 시민 없는 시민단체를 거쳐 신민단체로 떨어졌다. 조국 사태에서 시민단체가 보인 신민의 행태를 비판하며 탈퇴한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최근 새로운 시민단체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참여연대가 권력 감시 기능을 방기하고, 이를 수행하기 힘든 여건이라 따로 단체를 꾸리는 것"이라고 했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권력의 신민단체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신민임을 부끄러워하거나 성찰할 줄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오히려 신민 됨을 자랑스러워한다. "진보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유시민),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께 모든 권리를 양도했다"(공지영)고 당당히 밝힐 정도니 '신민 바이러스' 감염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황국신민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전쟁터에 나간 일본군 병사의 모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군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신민은 또한 주군을 위해 상대를 기꺼이 죽일 수 있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은 1971년 노래 '이매진(Imagine)'에서 상상했다. "뭔가를 위해 죽일 것도 죽을 것도 없는(nothing to kill or die for)" 세상. 충성스러운 신민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이 사는 세상이다.

시민이 살 수 없는 세상이란 한반도 북쪽 같은 곳이다. 그곳에선 백두혈통을 결사옹위하는 신민으로만 살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으로서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주의 체제로 출발해 지금에 이르렀다. 기적이고 행운이다. 건국 이후 선거 부정과 왜곡 같은 민주주의 훼손이 있었어도 시민이 살아갈 세상으로 진보해왔다. 이제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바꾸고 권력의 불법 혐의를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공수처법 첫 대상으로 삼겠다고 협박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해도 이를 응징할 1인 1표 대한민국 체제는 아직 살아있다.

무섭게 번지는 '신민 바이러스' 감염을 막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끝장이다. 진짜 깨어있는 시민의 단결된 힘이 민주주의와 우리의 미래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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