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중국에 되로 주고 말로 받아내려는 김정은 작전

조선일보
  •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입력 2020.02.03 03:17

우한 폐렴으로 밑뿌리째 흔들리는 김정은 전략
중국 돕겠다고 나선 건 무상 경제 지원 더 받으려는 꼼수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태영호 前 북한 외교관
김정은이 우한 폐렴 사태와 관련해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위문 서한을 보냈다. 김정은은 서한에서 우한 폐렴 사태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며 한집안 식구, 친혈육이 당한 피해로 여기고 있다"며 "조금이나마 함께 나누고 돕고 싶은 진정"이라고 했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모든 항공편과 열차 노선 운행을 잠정 중단하고 북·중 국경까지 폐쇄한 김정은이 오히려 중국을 '한집안 식구'로 묘사하더니 중국의 지원으로 겨우 버티는 처지에서 중국을 돕는다며 지원금까지 보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이 보기에 누가 누구를 도와주고 있는 형국인지 헷갈릴 것이다. 김정은다운 '꼼수'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로 급하기는 시진핑보다 김정은이 더할 것이다. 지난해 말 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으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새해부터 '충격적인 행동'을 준비하던 김정은에게 우한 폐렴 사태는 전혀 예견치 못했던 악재다. 우한 폐렴 발생 초기 미온적 태도를 보여오던 북한이 지난주부터 급기야 '국가 존망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 문제'라며 총력전을 시작한 것은 이번 사태로 김정은의 정면돌파 전략이 밑뿌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얼어 있어 북·중 국경 밀수가 제일 활발한 때다. 북한의 공식 발표가 없어 확진자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나 설사 감염자가 있다고 해도 장비와 기술이 낙후해 전국적 범위에서 확진하기 어려운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수십년 동안 지속된 어려운 식량 사정으로 주민들의 면역력은 떨어져 영유아나 노인들이 감염되면 완치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한 폐렴이 북한 종심으로 침습하면 북한 체제를 받치고 있는 군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선군정치' 시대 때 영양실조 현상이 제일 만연했던 곳이 휴전선 일대 '전연지대 군단'들이었다. 당시 군대 내 영양실조 현상이 오죽했으면 부모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자녀들에게 "제발 강영실(강한 영양실조 북한식 줄인 말)은 만나지 말라"고 당부했겠는가.

북한 당국은 외부에서 전염병이 들어올 위험이 발생하면 국경을 폐쇄하는 것과 동시에 국내에서 주민들의 이동도 제한한다.

기계보다 인력으로 건설하는 북한에서 전염병 차단을 위해 주민들과 군대를 집단적으로 건설에 투입하지 못하면 수많은 건설 사업이 멈춰설 수밖에 없다.

김정은의 자력갱생, 정면돌파 전략에는 관광 확대를 통한 외화 수입과 중국의 지원으로 버텨 보겠다는 타산이 깔려 있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단기 체류자들은 비자가 필요 없는 북·중 비자 시스템을 이용해 인력들을 중국에 교대로 투입하는 방식으로 대북 제재의 허점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 스스로 북·중 왕래를 차단하여 이런 '묘수'에도 차질이 생겼다. 양덕온천, 삼지연과 백두산지구 관광 개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이라는 관광산업으로 비어가던 금고를 채워보려던 관광 장려 정책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결국 북한이 숨통을 열 방법은 중국이 올해분 무상 경제 지원을 특별히 늘려 주는 것뿐이다. 매해 1월은 북한과 중국 사이에 그해분 무상 경제 지원 규모를 정하는 달이다. 김정은은 시진핑에게 한집안 식구라며 되로 주고 말로 받아 오려고 한다. 그러나 김정은을 몇 번 상대해 보면서 김정은을 다루는 묘리가 생긴 시진핑이 '충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담보 없이 통 큰 지원을 줄지는 미지수다. 사실 지난해 시진핑의 평양 방문 후 김정은이 오히려 단거리미사일 발사 횟수를 늘려 시진핑을 서운하게 만들었다. 중국에서 통 큰 지원을 받아내지 못하면 북한은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지난해 당 전원회의에서 대남 정책 방향을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도 이번에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가동을 중단하면서도 서울~평양 간 직통 전화와 팩스를 살려 놓은 것도 정 버티기 힘들면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우리는 우한 폐렴 사태로 금강산 관광 지역 우리 측 시설 철거를 한동안 지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우한 폐렴 악재는 우리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우리 의도대로 관리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중국과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여 우한 폐렴 사태를 북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공식 지원 요청이 없다고 해도 방역 협력 제안을 먼저 발표해 북한 주민들에게 '한집안 식구는 남과 북'임을 알려줘야 한다. 북한이 간부들에게만 나눠줄 한국산 마스크를 긴급 구매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다. 이럴 때 우리가 먼저 선방을 날리지 않으면 우한 폐렴 사태 장본인이 오히려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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