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반발에 결정 바꾼 정부… 아산·진천 "우릴 우롱하나"

입력 2020.01.30 03:00

[우한 폐렴 확산]
우한교민 격리지역 확정 '논란'
여론따라 위기대응 방침 오락가락… 국민 불안·지역갈등 더 키워

주민들 트랙터로 몰고 와 시위… 경찰 800명 투입… 밤까지 대치
복지 차관은 10분만에 쫓겨나

정부가 중국 우한에서 전세기로 데려오는 우리 국민 700여명을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에 나눠 수용하기로 하자 지역 주민들이 트랙터로 진입로까지 막으며 반발하고 나섰다. 전날 충남 천안에 격리하기로 했던 정부 방침이 하루 만에 뒤집히자 "갈팡질팡 행정으로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들고일어난 것이다. 정부의 허술한 대처가 지역 갈등을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밤 진천을 방문한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결사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에게 둘러싸였다가 10여분 만에 경찰 호위를 받으며 물러갔다.

29일 오후 충남 아산시 초사동 경찰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산 지역 주민들이 왕복 4차선 도로를 농기계들로 가로막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트랙터로 도로봉쇄 - 29일 오후 충남 아산시 초사동 경찰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아산 지역 주민들이 왕복 4차선 도로를 농기계들로 가로막고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이 도로는 인재개발원 건물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주민들은 이곳에 중국 우한 교민을 수용하겠다는 정부 결정에 반발해 도로를 점유했다. /신현종 기자
29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는 주민들이 밤늦게까지 항의 집회를 열고 정부의 결정에 반발했다. 이날 항의 집회에는 경찰 인력이 투입돼 가벼운 몸싸움도 일어났다. 경찰인재개발원에는 충남과 전북, 경기 지역 경찰기동대 11개 중대 880명이 대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지난 28일 정부는 당초 천안의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 격리 시설을 만들기로 방침을 세웠으나 "격리 시설은 아직 검토 단계로 결정되지 않았다"며 발표를 미뤘다. 정부 방침이 사전에 유출돼 천안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조치라는 지적을 받았다.

송환 교민 격리시설 2곳
이튿날 상황이 바뀌었다. 29일 오후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전인 오전부터 아산과 진천에 우한 폐렴 격리 시설을 만들겠다는 정부 방침이 알려졌다. 아산과 진천 지역 주민들은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주민을 우롱하느냐"면서 들끓었다. 아산시 초사동 주민 김재호(63)씨는 "천안에서 반발한다고 해서 변경해주다니 우리도 반발하면 바로 철회할 것이냐"고 했다. 경찰인재개발원은 반경 2km에 주민 250여명이 거주하며, 학생 150명이 다니는 온양초사초등학교가 있다.

아산시와 아산시의회도 각각 우한 폐렴 격리 시설 반대 입장을 내놨다. 천안에 비해 공항에서 거리가 멀고 대학병원 등 응급 의료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은 아산에 감염병 격리 시설을 설치하는 건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아산시의원 6명은 "격리 수용 시설을 당초 설치하기로 했던 지역에서 갑작스럽게 변경한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닌 힘의 논리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세현 아산시장도 "장소 선정에 대한 합리적 기준 제시를 정부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아산 지역 주민들은 이날 낮 12시부터 경찰인재개발원 앞 진입 도로에 몰려들기 시작해 오후 3시쯤에는 100명 넘게 모였다. 주민들은 트랙터 9대로 왕복 4차로 도로를 막아 차량 통행을 막았다. 아산 시민 사이에선 지역의 정치력이 천안에 밀렸다는 말도 나온다. 최모(61)씨는 "천안은 여당 소속 충남도지사의 출신지니까 이번 격리 시설 지정에서 빠져나간 것"이라면서 "아산은 야당 출신 국회의원이 있다 보니 힘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강립(왼쪽 둘째) 보건복지부 차관이 29일 오후 10시 30분쯤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주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자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정부, 우한 교민 격리 장소 번복… 화난 진천 주민들에 복지차관 봉변 - 김강립(왼쪽 둘째) 보건복지부 차관이 29일 오후 10시 30분쯤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주민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지자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당초 충남 천안으로 정해졌던 우한 교민의 격리 시설이 하루 만에 진천·아산으로 뒤집히자 진천 주민들은 이날 강력한 반발 시위에 나섰다. 정부는 이날 우한 현지 교민 720명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나눠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시스
이날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부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진천과 음성군 주민 200여명이 트랙터를 몰고 나왔다. 이날 오후 10시 40분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정부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방문했으나 곧바로 "결사 반대"를 외치는 주민들에게 둘러싸였다. 김 차관은 자신을 붙잡으려다 서로 엉키는 주민들을 뿌리치고 10여분 후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현장을 떠났다.

진천군은 인재개발원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인구가 밀집한 인근 혁신도시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충북혁신도시는 공공기관 11곳이 이주하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인구 2만5937명의 도시다. 인재개발원 반경 2km 이내에는 어린이집 28곳, 유치원 3곳, 초등학교 3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이 있다. 재학생은 6500여명이다. 주민 임모(42)씨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격리 시설이 마련된다니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불안감이 없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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