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감시제도 논란… ‘조건부 감형’인가 ‘치료사법’인가

입력 2020.01.26 09:00

'준법감시' 도입한 부영 회장 2심서 형량 반감
같은 재판부의 삼성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주목
이재용 부회장, 양형 참작 폭 따라 재수감 기로
법조계 "李 고려 대상 아냐"vs."사법발전 초석"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뉴시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뉴시스
4300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징역 5년)과 비교할 때 절반이나 감형(減刑)된 것이다. '준법경영'이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 회장의 판결을 계기로 '준법감시기구' 설치를 이유로 재벌 총수의 화이트칼라 범죄 형량을 줄여주는 것을 놓고 의견이 나뉜다.

이 회장의 항소심 재판은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가 맡았다. 재판부는 지난 2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이 회장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부영은 최대주주 또는 경영진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계열사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 5월 준법감시실을 신설했다"며 "준법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관련 업무를 외부인에게 맡기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2018년 2월 구속기소됐다. 이후 부영은 선진국의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등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회장도 지난달 결심공판 최후 진술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준법감시인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다.

부영의 이 같은 노력이 이 회장의 감형을 이끌어 낸 것일까. 일각에서는 1심과 비교할 때 절반이나 형량이 줄어든 것을 주목한다. "준법감시기구를 사후적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했던 범죄가 사라진 것이 아닌데, 다른 영역의 얘기를 놓고 과도하게 형량을 깎아준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부영그룹의 준법경영 노력만 형량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 가운데 유·무죄 판단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1심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무죄 판단을 내렸다. 1심 형량인 5년을 다시 뜯어보면 배임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나머지 혐의에 대해 징역 3년이 선고됐었다. 결국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 판단이 내려진 것이고, 나머지 3년을 놓고 '준법경영'을 반영해 6개월 감형한 것으로 봐야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시스
법조계 안팎의 시선은 삼성그룹으로 쏠린다. 환송 전 원심의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대법원이 원심이 인정한 36억원보다 50억원 많은 86억원을 뇌물·횡령액으로 판단하면서 재수감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인 상황에서 형량 감경 재량권을 쥔 재판부의 판단이 집행유예 대상(3년 이하 징역) 포함 여부를 가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은 이 회장과 같은 재판부가 맡고 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향후 정치권력자가 요구하면 또 뇌물을 줄 것인가, 요구를 거절하려면 삼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국정농단 같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의 도입을 주문한 것이다.

이에 삼성은 준법감시위원회를 지난 9일 출범시켰다. 승계와 노조 문제 등을 포함해 회사 내부의 법 위반 행위를 신고받아 조사하는 준법경영 감시활동 기구다. 재판부는 이 기구를 놓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 수 있다"며 "약속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엄격하고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점검 결과를 이 부회장의 형량에 반영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하지만 특검은 이에 부정적이다. 특검은 "재벌 혁신 없는 준법감시제도는 봐주기에 불과하다"며 "준법감시제도 하나만으로 (형량을) 논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최근 시민단체들이 연 간담회에서는 "재판부가 근거로 삼은 미국 연방법원 양형 기준은 (기업범죄의) '조직'에 대한 것으로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없다", "권력형 범죄자는 '치료'의 대상이 아닌 '응징'의 대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삼성전자 법인이 아닌 개인 자격에서 뇌물공여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은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른바 ‘변칙 플리바게닝(사법거래)’이라는얘기도 나온다. 재판부가 먼저 가이드라인을 준 뒤 이를 잘 따랐다는 이유로 형량이 감해진다면 ‘봐주기 재판’이라는 것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불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사후적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면 감형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경유착형 뇌물범죄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제대로 된 시스템을 도입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총수 개인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단죄와 재발방지를 동시에 도모하는 재판부의 노력을 '사법거래'로 폄하한다면 사법제도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 재판부는 그간 적극적인 '치료적 사법' 적용으로 주목받아 왔다. 치료적 사법이란 법원이 개별 사건의 처벌을 위한 유·무죄 판단에 그치지 않고 재범 방지 등을 위한 회복적 역할도 맡아야 한다는 담론이다. 약물중독, 음주운전, 소년범죄 분야를 중심으로 범죄자의 재사회화 방안으로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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