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뺑소니친 라임 공범들

입력 2020.01.24 03:10

윤진호 경제부 기자
윤진호 경제부 기자

2015년 신생 자문사였던 라임자산운용에는 당시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소위 '날리는'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외국계 증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종필 라임 전 부사장도 이때 합류해 헤지펀드 그룹장을 맡았고, 이 부사장 밑으로는 돈을 잘 굴린다는 선수들이 집결했다. "운용 성과가 났을 때 합리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이 전 부사장의 방침에 따라 이들은 최근 3~4년간 성과급으로만 매년 수십억원을 챙겨 갔다고 한다.

라임자산운용이 굴린 펀드가 고수익을 내자 금융 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판매해 주겠다고 나섰다. 일종의 모집책 역할을 한 것이다. 돈을 돌려주지 못하고 있는 라임펀드 투자금 1조6000억원 중 1300억원이 대신증권 반포지점 한 곳에서만 모두 판매됐다. 이곳 지점장이었던 장모씨에 대해 대신증권은 "반포지점을 대신증권 간판 지점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라임 사태 이면엔 이렇게 여의도 최고의 스타급 인물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9년 상반기부터 라임 펀드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고, 그해 7월 검찰 조사까지 시작되자 이들은 바람같이 사라졌다. 라임 이종필 부사장은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은 채 도주 중인데, 해외 밀항설까지 나오고 있다. 그와 함께 일하던 라임 임직원들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증권 반포지점장은 2019년 8월 메리츠증권으로 이직했다.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지점에 항의 방문해도 직접 책임을 물을 당사자들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수만 사라진 게 아니다. 라임 사태를 조사하는 금융감독원에서는 '심판'이 중도 교체됐다. 지난해 하반기에 라임자산운용 검사를 맡았던 담당 팀장이 라임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돌연 사표를 내고 민간 부동산신탁사로 이직한 것이다.

선수와 심판이 한꺼번에 사라지고 나니 사태의 조기 수습은커녕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남아있는 라임자산운용 실무진은 뒤처리에 급급하고, 금융 당국은 정확한 진상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들로부터 라임 펀드의 위험성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상환 능력을 검토하고 추가 장치도 마련해 발생 가능한 위험을 0%에 가깝게 조정해 뒀다"는 설명 자료까지 배포했다. 그러나 펀드를 판매해 준 금융회사들은 문제가 터지자 일제히 "법적으로 우리는 라임이 돈을 어떻게 굴리는지 모를 수밖에 없으니 우리도 피해자"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라임 사태 피해 규모는 2조원이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중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극히 일부일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사상 최악의 금융 스캔들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은 라임 사태는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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