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73]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

조선일보
  •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입력 2020.01.24 03:09

늘 패배하지만 "계속 싸워 계속 진다"와 "줄곧 져도 줄곧 싸운다"는 어감이 하늘과 땅 차이다. 한자 표현에서는 글자만 살짝 바꿔도 이런 효과가 난다. 누전누패(屢戰屢敗)와 누패누전(屢敗屢戰)이다. 우리 식으로는 연전연패(連戰連敗)와 연패연전(連敗連戰)이다.

민란 진압에 나선 청 말 대신 증국번(曾國藩)의 부하가 잇따라 패하자 "줄곧 지고 있다"는 보고를 내려다가 막료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패해도 계속 싸운다"로 고쳐 올려 면책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일화에서 비롯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닥친 위기를 우선 모면하고 보자는 이런 꾀는 "큰일은 작은 일로, 작은 일은 없던 일로 한다[大事化小, 小事化了]"는 문화가 그 토대다. 본래 웬만한 일에는 놀라서 허둥대지 말라는 권고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사안을 눙치다가 대충 끝낸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이렇듯 중국에는 '질질 끌다가 흐지부지하는 비결'이 있다. 이른바 '타자결(拖字訣)'이다. 중국인 특유의 지연(遲延)과 미봉(彌縫)의 맥락이다. 보통은 관료들이 적당하게 시간을 끌면서 사안의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는 태도를 꼬집는 데 잘 등장한다.

상황의 유불리(有不利)를 헤아리고 또 헤아리다가 이로운 쪽으로 슬쩍 자리를 옮기려는 사람의 사고가 숨어 있다. 제 의중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국면을 저울질하는 이해타산(利害打算)의 모략적 사유다.

지난 한 해는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사고와 행위가 돋보였다. 미국과의 무역 분쟁,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적절한 판단을 못 내려 화를 키웠다. 대만에는 구태의연하게 대응하다가 독립 성향의 민진당(民進黨)이 선거에서 압승하는 결과를 불렀다.

이제는 지난 연말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폐렴이 중국 정부의 은닉과 비공개로 인해 전 세계로 확산할 위험에까지 놓였다. '선택과 집중'으로 화려한 경제성장을 주도했던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참 낯설고 이례적인 모습들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