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하철 노조 파업 위협에 또 백기

입력 2020.01.21 03:00

"운전시간 12분 못늘린다" 반발에… 市·교통공사, 노조 요구대로 환원
쟁의 절차도 안 거친 불법행위 원칙 없이 수용해 나쁜 선례 남겨

민노총 소속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지하철 승무원의 평균 운전 시간을 12분 늘린 조치를 철회하라며 예고한 집단 승차 거부 압박에 20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결국 굴복했다. 교통공사는 이날 오전까지도 "운전 시간 12분 연장은 적법한 조치"라고 주장했으나 오후 들어 돌연 "시민 불편을 간과할 수 없다"며 노조 요구를 100% 수용했다. 노조의 승차 거부가 조합원 찬반 투표나 조정 등 쟁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행위임을 알면서도 백기(白旗)를 든 것이다. 설 연휴와 4월 총선을 앞두고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은 노조의 압박에 시와 교통공사가 원칙 없이 대응하면서 공공기관 노사 협상의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날 시청에서 긴급 브리핑을 갖고 "지난해 11월 16일 운전 시간을 4시간 42분으로 조정한 조치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승무원 운전 시간은 노조 요구대로 종전의 4시간 30분으로 환원된다. 교통공사 노조는 앞서 작년 10월에도 총파업을 예고하고 사측과 밤샘 협상을 벌여 신규 인력 충원 등 요구 사항을 관철시켰다. 그런데 한 달 뒤 사측이 승무원 근무시간(평균 10시간) 중 열차 운전 시간을 4시간 30분에서 4시간 42분으로 연장하는 방향으로 근무 체계를 개편하자 노조는 "노사 합의 없는 불법 노동행위이자 노동 인권 탄압 행위"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노조는 "근무시간 연장으로 기관사와 차장의 생명 안전이 위협받는다"고도 주장했다. 이어 "운전 시간을 종전대로 줄이지 않을 경우 21일부터 기관사와 차장이 열차에 탑승하지 않을 것"이라며 압박 강도를 높여왔다.

서울교통공사 사측과 노조의 '12분 싸움'에는 수당 문제가 걸려 있다. 공사 관계자는 "평균 운전 시간이 짧아지면서 투입 인원은 많아지고 이들에게 대체근무수당을 줘야 하는 구조가 고착됐다"며 "지난해 전체 초과근무수당 129억원 중 승무 분야에서 125억원을 받아가는 등 심각한 재정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승무원의 평균 운전 시간은 다른 공사에 비해 훨씬 짧다. 코레일(약 5시간), 부산(4시간 51분), 인천(4시간 48분), 대구(4시간 57분), 광주(4시간 49분), 대전(4시간 58분) 등이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다른 지역 지하철의 운전 시간과 비교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사 양측은 지난 19일과 20일 마라톤협상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고, 사측은 교통공사2노조·간부·외부 인력·퇴직자 등 대체 인력을 동원하며 비상 대응 계획을 준비했다. 그러나 설 명절을 앞두고 지하철 대란이 벌어질 경우 시민들의 비난이 잇따를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측의 백기에 노조는 기세등등한 모습이다. 사측 발표 후 노조는 "우리와 협의 없이 기습적·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며 "공사 측과 직접 만난 뒤 업무 거부 지침에 대한 최종 판단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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