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호응 않는데… 통일부 "北비자 받고 中여행사 이용하면 된다"

입력 2020.01.21 01:45

정부, 中업체가 北관광상품 만들고 안전교육도 시킬거라 예측
전문가들 "제3국이 지켜줄테니 목숨걸고 오지탐험 하라는 건가"
美는 "한미 워킹그룹서 협의해야할 사안" 우리 정부와 입장 달라

통일부가 20일 내놓은 '북한 개별관광' 세 가지 시나리오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14일)에서 언급한 뒤 엿새 만에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시나리오들을 소개하며 여러 차례 "상상의 날개를 펴볼 때" "정부 공식 발표가 아닌 실무 차원의 검토"란 표현을 썼다. 대통령이 연초부터 북한 개별 관광을 다그치니 면밀한 검토 없이 시간에 쫓겨 내놓은 '설익은 시나리오'임을 고백한 셈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통일부가 신변 안전 보장 대책도 없이 개별관광을 밀어붙이는 데 대해 "오지 탐험이나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라고 국민을 내모는 격"이라고 했다.

2018년 7월 판문점 북측 지역 앞에서 북한을 관광 중인 관광객들이 판문점 남측 지역을 보고있다.
판문점 북측 관광객들… 北관광 외국인 90%는 중국인 - 2018년 7월 판문점 북측 지역 앞에서 북한을 관광 중인 관광객들이 판문점 남측 지역을 보고있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90%는 중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외국 관광객의 다양화를 추진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외국 여행사에 국민 안전 떠넘겨"

정부에서 가장 유력한 안(案)으로 검토되는 것은 제3국 경유 관광이다.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이나 선양(瀋陽)의 총영사관에서 북한 비자를 받고, 중국 여행사의 북한 관광 상품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재 북한은 우리 국민에게 관광 목적의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 북의 호응이 없으면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시나리오'다.

북한이 호응하더라도 국민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상태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은 북한이 우리 관광객을 쏴 죽인 뒤 우리 측의 거듭된 요구에도 재발 방지와 신변 안전 보장 대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지적하자 통일부 당국자는 "개별 관광은 (과거 현대아산이 주도한) 사업 형태의 금강산 관광과 차이가 있다"고만 했다. 확실한 신변 안전 보장 대책 없이 개별 관광을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검토 중인 북한 개별 관광 방안
이 당국자는 "전 세계 국가들이 북한 개별관광을 하고 있으니 그런 방식에 준해서 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북에 억류됐던 관광객(오토 웜비어)이 석방 직후 사망(2017년)한 뒤 자국민의 북한 관광을 금지하고 있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외국에서도 북한 관광에 대한 인식은 '오지 탐험' '서바이벌 게임' 같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는 독특한 체험"이라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중국 업체가 대한민국 국민만 대상으로 하는 관광 상품을 만들 가능성이 크고, 그 상품을 담당하는 안내원을 대상으로 안전 교육 등을 적절하게 시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 전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 보장을 외국의 일개 민간 여행사에 아웃소싱하겠다는 발상이 놀랍다"고 했다. 통일부는 아직 중국 정부나 업체들과 공식 협의를 진행하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美 설득은커녕 눈 부라리는 정부

남북 경협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정부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 소극적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오히려 여권에선 우리 정부의 '과속'을 우려한 해리 해리스 주한 대사에 대해 "내정간섭" "총독" 등의 자극적 표현을 써가며 미국에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관광은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야당 관계자는 "미국이 제동을 거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기류는 우리 정부의 생각과는 확연히 다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으로의 달러 유입을 막아 비핵화를 압박한다'는 게 제재의 취지기 때문에 북한의 외화벌이에 도움을 주는 행위는 제재와 상관없이 자제하는 게 제재의 정신에 부합한다"며 "특정 대북 사업은 제재 위반이 아니니 해도 된다는 논리는 '위법만 아니면 범죄조직에 돈을 갖다 줘도 된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했다. 미 국무부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개별관광 등 남북협력에 대한 본지 질의에 "한·미 워킹그룹 협의 사안"이라고 했다. 제재 위반 여부를 포함해 여러 측면을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김정은은 작년 8월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 건설 현장을 찾아 "제재·봉쇄로 우리 인민을 질식시켜 보려는 적대세력들과의 첨예한 대결전"이라고 했다. 제재의 사각지대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외화난을 타개하겠다는 게 북이 관광지 개발에 매달리는 의도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북한 관광을 장려하는 것은 북한의 제재 우회를 돕고, 결과적으로 북한 비핵화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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