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北 외무상 리선권

조선일보
입력 2020.01.21 03:16

북 외무성 김계관 고문이 대미(對美) 핵 협상에 대표로 등장한 건 1993년이다. 30년 가까이 '북핵 대표'만 했다. 한·미 대표를 만나면 10~20년 전(前) 대표 안부와 함께 "핵 공부는 좀 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핵 과학자 수준의 지식을 늘어놓는다. 전직 외교관은 "북 외무성에는 핵·미국·중국 등 한 분야만 20~30년씩 파고든 베테랑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더해 협상에 실패하면 죽는다는 절박함이 북 외교의 최대 강점"이라고 했다.

▶1990년만 해도 북 외교는 중·소, 동유럽 중심이었다. 그런데 김정일 최측근의 아들인 리용호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군축과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핵·군축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다고 나섰다. 북핵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6개월간 미국 연구소를 돌며 관련 책만 한 배낭 짊어지고 귀국했다고 한다. 1차 북핵 위기 때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등 '벼랑 끝 전술'로 북을 유리한 협상 고지로 이끈 건 리용호의 아이디어였다. 

[만물상] 北 외무상 리선권
▶김정은 외교를 이끌던 리용호 외무상이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주석단(지도부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회의 종료 직후 찍은 단체사진엔 리용호가 빠졌다. 전례를 찾기 어렵다. 회의 도중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제 북 외무상이 리용호에서 군 출신인 리선권으로 교체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우리 대기업 총수를 향해 '냉면 목구멍' 발언을 했던 그 사람이다. 군사 회담 북측 대표로 나와 판을 뒤엎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탈북 외교관은 "외교 경험이 전무한 외무상은 리선권이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과거 허담 외무상이나 김용순 국제 비서처럼 외교관을 하다가 대남 비서를 맡은 적은 있어도 '대남 일꾼'이 바로 외무상에 발탁된 사례는 없다는 것이다. 당 서열에서도 리선권은 후보위원으로 제1부상인 최선희(중앙위원)보다 낮다. 최근 김정은은 외무성 차관급을 부총리급인 당 외교 부위원장으로 올렸고, 별 두 개 공병 출신을 갑자기 별 네 개로 만들어 인민무력상(국방장관)에 앉혔다. 김일성·김정일도 맘대로 인사를 했지만 외교·안보만큼은 전문가를 고르고 골랐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김정은이 이런 인사를 계속하면 강점이던 북 외교가 약점으로 변할 수 있다. 북한만이 아니라 한국도 외교력이 나라 운명을 좌우하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 외교 수장은 '인형' 소리를 듣고 북한엔 '문외한 막말꾼'이 기용됐다. 무언가 조짐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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