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당신은 왜 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건가요

입력 2020.01.21 03:15

인헌고 사태 폭로한 학생들, 학교·교사·교육청이 압박하는데
이들을 위해 함께 싸워줄 야당 의원들은 지금 어디 있나

장일현 여론독자부 차장
장일현 여론독자부 차장
고교생들이 교사의 정치 편향 교육을 폭로한 서울 인헌고 사태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학생들 나이 때 읽었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돈 없고, 힘없고, '빽' 없는 소설 속 난쟁이는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 찬 현실의 높은 벽 앞에 좌절하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다. 난쟁이와 그 가족의 절망과 절규에 오랜 세월 가슴이 저렸다. 학창 시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소설 중 하나였고, 필자가 기자 직업을 택하게 한 작은 밑거름이기도 했다. 그 절벽이 인헌고 사태에서 느껴졌다.

처음엔 싱거운 결말을 예상했다. 교사는 가벼운 징계를 받고, 학교는 유감의 뜻을 밝힌 뒤 재발 방지를 약속할 줄 알았다. 상황은 반대로 갔다. 학생들을 짓누르는 세력은 거대했고, 막강했다. 학교·교사는 학생에게 울타리인 동시에 절대 권력이다. 학생들의 삶 대부분, 현재와 미래를 좌우한다. 그런 학교가 폭로의 주역인 최인호군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회부했다. 학생들은 학교 밖에 도움을 청했지만 매몰찬 역풍을 맞았다. 좌파 교육감이 장악한 서울시교육청은 한 달간 특별 장학을 실시한 뒤, 정치 편향 교육은 없었다며 교사에게 면죄부를 줬다.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는 거대한 절벽이었다. 최군에 따르면 인헌고는 21일 최군 등 이번 폭로 주역 2명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 이 학생들을 지켜줄 것인가.

그동안 정치권, 그중 야당 쪽을 유심히 지켜봤다. 현 집권 세력이 행정·입법·사법은 물론, 각 지자체와 교육계, 문화계 등 사회 거의 전 영역을 장악한 상황에서 그나마 큰 소리 내고 싸울 수 있는 존재는 야당 정치인뿐 아닐까 생각했다. 기대는 빗나갔다. 극히 일부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거나 언론에 입장을 말하거나 시교육청을 항의 방문하는 정도였다. 치열하게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현장에서 결연하게 함께 싸우며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줄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최군은 "텐트 농성 때 국회의원 한 명이 딱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2~3년 전만 해도 5만5000명이던 경북 울진의 인구는 최근 5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현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라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중단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이곳에서 벌어진 주민들의 투쟁 때 야당 의원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김태봉 울진읍 자치발전회장은 "서울서 성명서에 서명하고 큰 집회에 얼굴 내밀어도 현지 집회 때 참가한 자유한국당 의원을 본 건 한 번 정도"라며 "야당 의원들도 정부 눈치를 보는 모양"이라고 했다. 지난 16일 충남 태안군청 앞에서 어민 200여명이 모여 "해상 풍력 설치하면 우린 모두 죽는다"며 반대 집회를 하는 곳에서도 야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야당 의원들이 수퍼맨도 아니고, 어떻게 모든 사회 문제와 현장에서 투쟁하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런 말을 하기엔 대한민국의 현실은 너무나 절박하다. 야권엔 뚜렷한 목적의식과 강력한 행동력을 갖춘 전사가 필요하다. 현 정권이 '모든 국민의' 정부이기를 포기하고, 일부 세력과 특정 이념을 위한 좌파·사회주의 정책이 폭주하면서 치명적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소상공인, 농·어민, 학생들…. 소설 속 난쟁이처럼 돈·힘 없고, 전교조나 민노총 같은 조직도 없는 존재들이다. 거대한 권력 앞에 한없이 무력한 난쟁이들의 외침이 사회를 떠돈다. "야당 의원님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요. 당신들은 그 배지를 왜 달고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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