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으로 빛난 고장, 유리로 다시 반짝이다

입력 2020.01.17 03:21 | 수정 2020.01.17 18:28

[뜬 곳, 뜨는 곳] 유리공예 도시 거듭난 강원 삼척

석탄산업 쇠락하며 인구 줄었지만 2009년 세계 최초 석탄 폐석 활용
유리 생산 성공하며 활력 되찾아…
공예시연 볼 수 있는 유리박물관 개관 1년여만에 16만명 찾고 공예체험 가능한 유리마을도 인기

지난 2일 오후 강원 삼척시 도계읍 도계유리나라 유리공예실에 1m가 넘는 긴 대롱이 등장했다. 공예 작가 손종훈씨가 1500도 용해로에서 벌겋게 달궈진 유리물을 대롱 끝에 묻혔다. 곧이어 반대편 대롱 끝으로 손씨가 큰 숨을 불어 넣자 투명한 풍선이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신기한 듯 바라보던 관람객 20여명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손씨는 부푼 유리를 집게로 집어 가며 뜨거운 가마 속에 수차례 넣었다 뺐다. 20여분 후, 색유리가루가 뿌려진 유리 화병이 만들어졌다. 손씨가 완성된 화병을 대롱에서 떼어내자 박수가 쏟아졌다.

국내 최대 유리박물관인 도계유리나라는 하루 5차례 공예 시연이 펼쳐진다. 유리공예의 꽃이라고 불리는 블로잉(blowing·액체 유리를 부풀려 공예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특히 인기다. 1500도의 열로 녹인 액화 상태의 유리를 대롱에 찍어내 풍선처럼 불며 작품을 만든다. 이곳에는 3m 높이의 거대한 유리 공예 작품부터 작은 유리컵까지 390여점이 전시돼 있다. 거울과 조명을 이용해 무한(無限)의 세계를 표현한 구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옮겨놓은 듯한 거울방도 인기다. 이날 가족과 함께 도계유리나라를 찾은 김복운(43)씨는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신기한 체험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일 강원 삼척시 도계유리나라 공예실에서 유리공예 작가가 대롱 끝에 숨을 불어넣어 액화 유리를 유리 화병으로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2일 강원 삼척시 도계유리나라 공예실에서 유리공예 작가가 대롱 끝에 숨을 불어넣어 액화 유리를 유리 화병으로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삼척시
석탄의 도시 강원도 삼척이 유리공예의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유리 공예섬 무라노에서나 볼 수 있는 유리 작품을 삼척 도계읍에서 만날 수 있다. 지난 2009년 세계 최초로 석탄 폐석을 활용한 유리 생산에 성공하면서 부활의 전기를 맞았다. 지난 2007년엔 도계읍에 유리 특화 마을인 도계유리마을이, 지난 2018년 3월엔 유리갤러리 등을 갖춘 도계유리나라가 잇따라 들어섰다. 도계유리나라 관람객은 개관 후 15만5400명(지난해 12월 기준)을 기록했다. 도계읍 인구는 1만829명. 거주 인구의 14배가 넘는 관람객이 유리박물관을 보기 위해 도계읍을 찾은 것이다.

한때 삼척 도계읍은 어딜 가든 탄광이었다. 1930년대 무연탄 광맥이 발견된 후 석탄 산업을 앞세우며 광업도시로 컸다. 1980년대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석탄을 생산하며 국가 근대화에 앞장섰다. 일자리를 찾기 위한 사람도 몰리며 1980년대엔 인구가 4만5000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발표되면서 탄광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도시는 급속히 황폐화됐다.

쇠락의 길을 걷던 도계읍엔 지난 2004년 변화가 찾아왔다. 지역 폐자원인 석탄 폐석을 이용한 유리 산업이 지역을 부활시킬 새로운 자산으로 떠오른 것이다. 석탄 폐석은 탄광의 골칫거리였다. 산처럼 쌓여 도시 미관은 물론 환경오염의 원인이 됐다. 하지만 삼척시와 강원대는 도계읍 폐석에 유리의 주원료가 되는 규사(SiO₂)가 75% 이상 함유된 점을 확인했고, 연구를 통해 지난 2009년 세계 최초로 석탄 폐석을 활용한 유리 생산에 성공했다. 김정국 전 강원대 교수는 "광산에서 석탄을 캐면 나오는 폐석을 이용해 유리를 만들기 때문에 도계유리는 파란색과 검은색의 독특한 색을 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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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의 유리박물관인 삼척 도계읍 도계유리나라엔 수많은 거울과 다양한 색의 전구로 만들어진 거울방이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거울방을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들. 거울방에선 마치 우주를 유영(游泳)하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어 인기가 많다. /삼척시

도계유리나라에서 직선거리로 1㎞가량 떨어진 흥전리엔 '유리 빚는 마을'인 '도계유리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유리 제품을 개발하고 유리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게 조성된 특화 마을이다. 유리 공예품 판매와 공예 체험을 통해 지난해 1억원 이상의 경제 효과가 발생하는 등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삼척시는 유리 창업 공방단지 조성과 강원대 도계캠퍼스 내 유리공예학과 신설 등을 추진해 유리공예 선도 지자체의 입지를 다져나갈 계획이다. 유리 창업 공방단지는 도계읍 일원에 오는 2022년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사업비 40억원이 투입된다. 시는 오는 2021년까지 유리공방단지 조성 타당성 조사 용역을 실시하고, 읍내 곳곳에 유리 공방 20곳을 조성해 창업 예정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 폐광 지역 특화산업 육성을 위해 강원대와 도계캠퍼스 내 유리공예학과 신설을 협의 중이다. 이미 강원대는 유리공예학과 신설을 위해 지난해부터 가상학과를 운영 중에 있다. 김양호 삼척시장은 "우리나라 근대화를 이끈 석탄 도시 도계를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같은 유리 도시로 변화시켜 침체된 도시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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