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굴에 한국 100년이 담겨있다

조선일보
입력 2020.01.17 03:01

갤러리현대 개관 50주년 기념전
김환기·이중섭 등 54인의 인물화, 시대별 구분해 韓 근현대미술 회고

얼굴에 다 쓰여 있다. 웃거나 울었던 표정의 모든 갈래가 남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세월의 관상을 헤아리는 일과 같다.

인물화를 통해 100년에 걸친 한국 근현대미술의 생김새를 돌아보는 대형 전시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전관에서 3월 1일까지 열린다. 한국 첫 서양화가 고희동부터 김환기·박수근·이중섭 등 화가 54인의 그림 71점을 시대별로 구분했다. 개관 50주년을 맞아 전시를 준비한 박명자 회장은 "한국 구상회화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근대와 함께 그림은 산수(山水)에서 개인으로 넘어왔다. 이윽고 벌거벗었다. 한국인이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최초의 누드화, 김관호의 '해질녘'(1916)이 그 초입에 있다. 대동강변에서 목욕하던 두 여인이 맨몸으로 뒤돌아 있다. 이 그림을 본 춘원 이광수는 "구화(舊畵)는 화(畵)를 보고 그리되 신화(新畵)는 실물을 보고 그리니… 그림에 생명이 떠다니는 것"이라고 매일신보에 썼다. 이 같은 알몸은 서진달 '나부입상'(1934) 등으로 이어진다. 미술사학자 목수현은 "인체 비례가 조선 여인의 그것을 보여줌으로써 누드의 '한국화'가 진행됐음을 감지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보여주는 인물화들. ①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②오지호 ‘아내의 상’(1936). ③김관호 ‘해질녘’(1916). ④장리석 ‘복덕방 노인’(1958). ⑤이인성 ‘어린이’(1940년대).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보여주는 인물화들. ①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 ②오지호 ‘아내의 상’(1936). ③김관호 ‘해질녘’(1916). ④장리석 ‘복덕방 노인’(1958). ⑤이인성 ‘어린이’(1940년대). /갤러리현대
짧은 치마 차림의 여성들을 꾸짖는 이응노의 수묵담채 '거리 풍경―양색시'(1946)처럼, 인물은 당대의 세속을 드러낸다. 전쟁이 그 중심에 있다. 권옥연은 1951년 신혼의 아내를 그렸다. 프랑스 화가 고갱의 여인들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시선과 피부색, 그렇기에 제목 '폐허에서'는 전쟁 속에서도 기어코 태어나는 어떤 의지처럼 느껴진다. '복덕방 노인'(1958)은 바지춤에 한 손을 찔러넣고 덤덤히 담배를 태우는 노인을 비춘다. "그때 복덕방 노인들이 다 전쟁 전에는 관공서 중역이었다"는 화가 장리석의 회고처럼, 이 늙은 주역은 한 시대의 종언처럼 보인다.

점차 인물은 전형성에서 벗어나, 능동적 얼굴로 변화한다. 전통의 표상으로 존재하던 여인들은 푸른 담배 연기와 함께 고독을 응시하는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1978)에 이르러 욕망의 주체가 된다. 김원숙은 '사랑의 춤'(2002)으로, 정종미는 '보자기 부인'(2008)으로 과거의 여자를 복권하며 다른 의미의 미인도를 그려낸다.

격정과 피로, 절망의 적극적 호소를 통해 인물은 현재를 향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가슴이 흙으로 범벅(강요배 '흙가슴')되지만 결코 지저분하지 않다. 생활의 복판(류병엽 '광화문의 아침')에서 이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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