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주택거래 허가제

조선일보
입력 2020.01.17 03:16

공산주의 시절 소련 국민 사이에 부(富)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소유물이 둘 있었다. 자가용과 '협동주택'이란 이름의 민간아파트였다. 집은 국가가 무상 보급했는데 어떻게 주택이 부의 상징이 될 수 있었을까. 국가의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개인이 자기 돈 주고 사는 민간주택 건축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주택 매수자들은 은행 돈을 빌려 10~20년 나눠 갚는 식으로 집값을 치렀다. 협동주택은 질 좋은 주택으로 인식되면서 정부 방조하에 활발하게 거래가 됐다.

▶북한에선 주택 매매·임대가 형식적으론 불법이지만 '입사증(入舍證)'이란 주택 사용권이 광범위하게 거래되고 있다. 거래 대금은 달러나 위안화로 치러지는데, 평양의 질 좋은 아파트는 가격이 20만달러(2억3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주택 거래가 짭짤한 비즈니스가 되면서 자금력 있는 개인이 권력기관 비호 아래 다세대 주택을 지어 파는 사례가 늘고 있고, 주택 매매를 알선하고 중개료를 받는 직업까지 생겼다고 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청와대 정무수석이 집값 잡겠다며 '주택거래 허가제'를 언급하자 인터넷에선 온갖 풍자와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네티즌은 "치킨 값이 급등했으니 치킨 많이 사 먹는 소비자에게 '치킨세'를 매기고 '치킨 구매 허가제'도 실시하자"는 글을 올렸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은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쏘아붙였다. 여론이 비등하자 청와대는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토지의 경우 거래허가제가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투기 우려 지역을 거래 규제 구역으로 묶고 매매 때 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한다. 왜 토지는 되고 주택은 안 되냐고 하지만 토지와 주택은 재화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토지는 변경될 수 없는 자연 상태로서 늘고 줄 수 없는 한정된 재화다. 방송 전파와도 같다. 국가 관리 필요성이 인정된다. 반면 주택은 사유재산 성격이 강하다. 부동산 규제 강경파로 소문난 국토부 장관도 "주택거래 허가제를 하겠다 하면 난리 날 것"이라며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었다.

▶우리 헌법은 사유재산권, 재산 처분권,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대부분 국민은 집 한 채 가진 게 전 재산의 70~80%를 차지한다. 이런 재산을 맘대로 팔지도 못하게 막는 건 공산 독재국가도 안 하던 행태다. "청와대 사람들 '발언 허가제'가 필요하다" "차라리 부동산 국유화를 하라"는 냉소가 쏟아진다. 그런데 지금 정무수석은 움찔하고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비싼 아파트 못 가진 사람들 표가 더 많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