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당이 강제로 만든 기업 이사 자리 700여개, 누구 몫이겠나

조선일보
입력 2020.01.17 03:19

법무부가 대주주 견제 강화를 명분으로 상장기업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을 만들어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당초엔 1년 유예기간을 두고 검토·보완을 한 뒤 내년부터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강하게 요구해 올봄 주총 때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정부가 법규로 민간 기업의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사회주의 국가를 빼고는 보기 어렵다. 영국이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지만 강제 아닌 권고 사항에 불과하다.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부를 것이 뻔한 이 중대한 사안을 당·정은 눈도 깜짝 않고 밀어붙였다. 설사 하더라도 국회 심의를 거치는 법률 개정을 통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야당 반대를 피하려 시행령 개정이란 꼼수까지 썼다. 여당이 기업 사외이사 문제와 무슨 특별한 관련이 있다고 이렇게까지 나서는지 그 이유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제 곧 4월 총선 공천 과정이 시작되면 많은 탈락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이 반발해 출마하면 표가 분산돼 불리해진다. 반발 출마를 막으려면 '떡'을 줘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이 공기업 사장이나 상임감사였다. 그런데 공기업 자리는 이미 여유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2800명 중 500여명이 이른바 '캠코더'(선거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신임 공공기관장은 절반가량을 친여 인사들이 차지했고 상임감사 자리는 80% 이상 챙겼다.

결국 민간 기업의 팔을 비틀어 자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당장 3월 주총 시즌에만 560여개 기업에서 700여명의 사외이사가 교체돼야 한다. 여당 공천에서 떨어진 낙천 낙하산 부대가 공기업이 아니라 민간 기업에까지 대량 투하되는 새로운 기록이 만들어지게 됐다.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 중 29곳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국민연금이 그 행동대장 역할을 할 것이다.

30·40대 가장들이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고 있는데 정권 주변 사람들만 유례없는 일자리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제는 고액 연봉의 민간 기업 사외이사 자리까지 가져가겠다고 한다. 권력을 이용해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을 보면 두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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