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봉건적 命 거역하라, 우리는 민주 시민" 한 검사의 외침

조선일보
입력 2020.01.16 03:20

법무연수원 김웅 검사가 수사권 조정 등에 항의해 사직하면서 남긴 글이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9시간 만에 2100여 검사 중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실명으로 지지 댓글을 달았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법조인이 그 글을 소셜미디어로 퍼나르며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이 "이번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 측면에서 부당하다"며 사임하는 일도 있었다.

김 검사는 글에서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은) 거대한 사기극"이라며 "결국 도착한 곳은 중국 공안이자 경찰 공화국"이라고 했다. 과장만은 아니다. 한국 형사사법제도의 모델이 된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 대부분이 검사의 수사 지휘권을 헌법·법률로 명시하고 있다. 검찰에 경찰 징계권까지 줘 경찰을 통제한다. 미국은 검사가 지휘하지 않는 대신 자치경찰인 주(州)경찰이 대부분의 수사를 담당하고 전문 분야별로 국가 수사기관을 두고 있다. 경찰 조직과 권한을 분산해 남용을 막는 것이다. 중앙집중적 경찰이 검찰 지휘를 받지 않고 사건 종결권까지 갖는 구조는 중국의 공안·검찰과 흡사하다. 검경 개혁을 한다면서 선진국이 아니라 공산당 일당 국가 제도를 베낀 것이다.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찰 권력 비대화를 방지하기 위해 수사권 조정은 자치경찰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검찰이 조국을 수사하고 청와대의 '선거 공작'을 파헤치자 경찰 개혁 부분은 쏙 빼놓고 오히려 말 잘 듣는 경찰에 권력을 더 주는 안을 밀어붙였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김 검사가 "검찰 개혁은 말짱 사기"라며 "집권 연장을 위한 것"이라고 한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

김 검사는 검사들을 향해서는 "그깟 인사나 보직에 연연하지 말라" "봉건적 명(命)에는 거역하라. 우리는 민주 시민이다"라고 했다. 검찰에 내리치는 죽비 소리와 같다. 검찰이 개혁 대상이 된 것은 강도나 절도 사건 수사를 잘못해서가 아니다. 검사들이 승진할 수 있는 자리에 가기 위해 대통령의 사냥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비판받게 된 것이다.

지금 검찰은 대통령과 측근들의 불법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그러자 대통령이 수사 검사들에 대해 '인사 학살'을 벌이고 있다. 수사 조직 자체를 공중분해시키는 직제 개편도 곧 있을 것이라고 한다. 더 이상 수사하지 말고 덮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불법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것은 모든 공직자의 의무이자 시민으로서 권리다. 김 검사는 "추악함에 복종해 겨우 얻는 것은 잠깐의 영화일 뿐 평생의 더러운 이름이 남는다"고 했다. 김 검사의 용기 있는 외침에 이제 검찰이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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