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보다도 작은 오차… 그 정교함에 인생을 건다

조선일보
입력 2020.01.15 03:00

[이지윤]
바렌보임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최초의 동양·여성·최연소 악장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 음악가로 16일 피아니스트 벤킴과 첫 무대

포커를 처음 해본 숙맥이 얼떨결에 '잭팟'을 터뜨렸다. 450년 역사의 독일 명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에서 최초의 동양인·여성·최연소 악장으로 활약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28)은 오디션 보던 날을 행운의 도박에 비유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나와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6년간 유학하며 앞날을 참 많이 고민했어요. 마침 베를린 필 악장 출신인 지도교수 콜랴 블라허 선생님이 괜찮은 학생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한번 도전해볼래?' 물어보셨죠."

이지윤
손가락으로 짚는 1㎜보다도 작은 오차 하나에 바이올리니스트는 인생을 건다. 이지윤은 "그 정교함이 가슴 쿵쿵 뛰는 매혹"이라고 했다. /박상훈 기자
경험 삼아 시험을 봤는데 기적의 팡파르가 울렸다. 2017년 명장 다니엘 바렌보임(78)이 이끌고 있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에서 악장으로 뽑혔다. 이듬해 5월 단원들 만장일치로 종신 악장이 됐다. 지난해 6월엔 이 악단의 가장 큰 여름 이벤트에 발탁돼 4만5000명 앞에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올해, 이지윤은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의 상주 음악가가 되어 네 차례 자신만의 무대를 연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30세 미만 클래식 연주자 중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려는 지점에 서 있는 음악가에게 1년간 독주회를 네다섯 번 열 기회를 주는 제도다. 곡목을 마음껏 짤 수 있고, 파트너도 직접 고른다. 14일 아침 서울에 도착한 그는 악장으로 숨 가쁘게 산 지난 2년 6개월을 떠올리며 "이지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분위기를 내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2015년 그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시상식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을 겪었다. 사회자가 우승자로 '임지영'을 불렀는데 발음을 잘못 알아들은 동료들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착오란 걸 알고 되돌아올 땐 오히려 담담했어요. 우승자가 아니라 열두 명 중 여섯 명의 입상자로 다시 나갈 땐 그 길이 참 멀게 느껴졌죠." 그는 "속이 상했지만 덕분에 무슨 일이 터져도 단단한 심장을 갖게 됐다"고 했다. 실제로 1년 뒤 그는 카를 닐센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열여섯 소년처럼 모든 곡을 태어나 처음 지휘하는 것처럼" 열정을 쏟아붓는 바렌보임을 만나 지휘자와 단원들 간 소통을 책임지는 "오케스트라 속 외교관"으로 눈부신 비상을 꿈꾸고 있다.

첫 무대는 16일 오후 8시에 열린다. ARD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벤 킴과 함께 버르토크의 '6개의 루마니아 민속 춤곡'과 야나체크 소나타, 코른골트 오페라 '죽은 도시' 중 피에로 춤곡 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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