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부동산 투기와 전쟁서 이기고 싶은가

조선일보
  •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입력 2020.01.15 03:17

강남 집값 잡으려면 강남 수요 줄이려 하지 말고 다른 지역에 수요 몰리게 해야
비강남 지역 규제 대폭 풀고 재개발·재건축, 건폐율·용적률 등 공급 극대화 방안 계속해야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가지 목표만 추구할 수 없는 정부의 정책에서 정책 목표 간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정책 수단 간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것은 성공의 관건이다.

부동산이 되었든 주식이 되었든 통화가치가 되었든 자국의 자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일국의 자산 가치 상승은 임금 상승과 함께 성공적 경제 발전의 결과이며 자랑할 일이다. 아무리 동 단위까지 세분해서 지정한 일부 지역의 고가 아파트만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자국의 자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정부의 정책 목표로 삼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부동산 시장은 값이 올라간다고 반드시 수요가 줄지 않고, 내려간다고 수요가 늘지도 않는 청개구리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투자(투기와 투자는 원래 구별이 안 된다) 대상으로서 집이 그렇다. 그러나 주거의 대상으로서는 값이 내리면 분명히 수요가 는다. 온갖 무리수를 두어가면서 강남 집값을 떨어뜨리면 돈 많은 실수요자나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고 있는 중국의 현금 부자에게 싼값에 살 기회를 제공할 뿐 수요를 억제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배고픈 것이 아니라 배 아픈 것이 문제이고, 부동산 가격 상승 그 자체보다 격차가 더 문제가 아닐까? 가장 비싼 아파트 20%의 평균 가격을 가장 싼 20%의 평균으로 나눈 배율을 아파트 가격 5분위 배율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12월 6.83을 기록해서 1년 전 6.2배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서울은 4.7에서 4.8로 조금 올랐다. 2008년 12월 8.1로 시작한 이 수치는 2015년에 4.5까지 떨어졌으나 그 이후 계속 상승해서 9년 전인 2011년 1월 수준으로 돌아갔다.

서울보다 전국의 배율이 훨씬 높고, 더 큰 폭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더 큰 문제라는 의미다. 대다수 국민이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강남 부동산의 가격 상승 그 자체보다 내 집보다 훨씬 더 올랐다는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강남의 집값을 잡기 위해서 강남의 수요를 줄이려고만 하기보다는 수요가 다른 지역으로 옮아가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강남 지역 아파트에 대항하고 이길 수 있는 대체재를 공급하자는 것이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재개발, 재건축 등 토지 이용 관련 규제와 최저임금, 주간 노동시간 등 노동시장 관련 규제를 비강남 지역에 한해서 모두 풀어 주거나 각종 규제 권한을 지자체로 넘겨서 정부의 투자 활성화 정책들이 비강남에서 실현되도록 하면 돈과 사람이 옮아가고 값도 올라가기 시작할 것이다. 일단 그런 조짐이 보이면 주거 수요는 물론 투자 수요까지 옮아갈 것이다. 강남 수요 자체만 붙들고 씨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강남 집값 잡기에서 정부가 둔 최고의 악수는 자사고, 특목고의 일괄 폐지다. 비강남 지역에 특목고, 자사고를 신설해 주겠다고만 해도 비강남 지역의 인기가 높아질 것이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규제 때문에 실물투자가 더 어려워서 여유 자금이 더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해 가면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늘려도 그 대부분이 토지보상금이다. 잠자고 있는 땅을 깨워서 현금화해 주면 그 돈이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찾아서 강남으로 온다고 한다. 강남 아파트 이외에 돈이 갈 데를 만들어 주지 않고서 어떻게 강남 수요를 줄일 수 있겠는가?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강남에 공급을 늘리는 것도 얼핏 보기에는 배 아픈 문제를 격화시킬 것 같아 보이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수요는 느는데 공급을 막으면 그것이 투기의 온상이다. 건폐율, 용적률 같은 규제도 뉴욕, 홍콩 수준으로 풀어서 공급을 극대화해야 한다. 강남의 거주 여건이 나빠질 것을 걱정한다면 참 한가한 소리다. 강남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 지역에 공급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다. 분당이 강남의 집값을 10여년간 묶어 놓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린벨트를 풀어서 마련한 요지에 보금자리 주택 등 서민주택 공급을 늘린 것은 서민주택 가격만 떨어뜨린 것일 수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정책 목표와 수단을 재정비해서 이번 전쟁에서는 꼭 이기기를 바란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