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까지 가세한 '기업은행장 반대 투쟁'... 12일째 출근 저지 '강대강' 대치

입력 2020.01.14 17:39

기업은행 노조, "왜 ‘낙하산 근절’ 대선 前 약속 안 지키나"
민노총까지 연대투쟁 나서…靑, 금융노조와 대화 시도
文, 신년 기자회견서 "인사권은 정부에…낙하산 아니다"
노조, 즉각 "금융을 권력에 예속 말라" 반발

IBK 기업은행 노조가 지난 3일부터 12일째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윤종원 신임 행장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전에 했던 '금융권 낙하산 인사 근절' 약속을 파기했다는 이유다. 윤 행장은 출근 저지에 맞서 별도 사무실에 출근해 집무를 이어가고 있어 양측의 ‘강(强) 대 강(强)’ 대치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며 낙하산 논란을 일축하자 노동계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낙하산 반대’ 투쟁에는 기업은행 상급단체인 한국노총뿐만 아니라 현 정권의 핵심 기반으로 평가받는 민주노총까지 가세해 노동계의 투쟁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 "정권 입맛 맞는 이들로 줄줄이 교체될 것"…민노총까지 연대 투쟁
14일 기업은행 노조에 따르면 이날에도 노조원 100여 명이 모여 윤 행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이어갔다. 노조는 서울 을지로 IBK 기업은행 본점 출입구에 ‘단 한발짝도 들여보내지 않겠다!’ ‘함량 미달 낙하산 행장 반대한다’ 등의 현수막을 내걸고 윤 행장의 출입을 12일째 막고 있다. 이 자리에는 박홍배 한국노총 산하 전국금융산업노조(금융노조) 위원장 당선인이 참여했다.

IBK 기업은행 노조가 본점 출입구를 막고 윤종원 신임 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농성을 펼치고 있다. 윤 행장은 서울 삼청동에 임시 집무실을 마련하고, 출근 중이다./기업은행 노조 제공
IBK 기업은행 노조가 본점 출입구를 막고 윤종원 신임 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농성을 펼치고 있다. 윤 행장은 서울 삼청동에 임시 집무실을 마련하고, 출근 중이다./기업은행 노조 제공
전날 노조는 조합원 700여 명이 참여한 토론회도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지난 3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윤 행장 출근 저지 투쟁에 대한 경과 보고와 예상 투쟁 기간, 투쟁 목표 등이 공유됐다. 김형선 기업은행 노조 위원장은 "이번 투쟁의 대상은 윤종원 은행장 내정자가 아니라 이 사태를 초래한 청와대와 정부, 집권 여당"이라며 "당·정·청의 진정한 사과와 대화 의지가 있다면 노조도 언제든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가세했다. 지난 9일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사무금융노조)와 한국은행 노조, 10일에는 금융감독원 노조의 간부들이 기업은행 본점을 찾았다. 이들은 모두 국가 금융기관의 노조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영근 한국은행 노조 위원장은 연대사에서 "낙하산 인사를 용인하면 조직 문화가 정권 코드에 맞춰지고, 구성원들은 낙하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기업은행은 이번에 반드시 낙하산을 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창화 금융감독원 노조 위원장은 "금감원 낙하산 인사가 일으킨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채용 비리"라며 "이대로 낙하산을 통과시키면 내부 인사들부터 정부와 자기 입맛에 맞는 이들로 줄줄이 교체될 것"이라고 했다.

IBK 기업은행 노조가 지난 13일 본점 대회의실에서 윤종원 행장 출근 저지 투쟁과 관련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 토론회에서 노조 집행부는 투쟁 경과와 예상 종료시기, 목표 등에 대해 조합원에 설명했다./기업은행 노조 제공
IBK 기업은행 노조가 지난 13일 본점 대회의실에서 윤종원 행장 출근 저지 투쟁과 관련한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 토론회에서 노조 집행부는 투쟁 경과와 예상 종료시기, 목표 등에 대해 조합원에 설명했다./기업은행 노조 제공
기업은행 노조의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은 오는 21일로 예정된 차기 위원장 선거가 끝나면 투쟁에 참가할 계획이다. 현재 위원장 후보로 나선 김만재 후보와 김동명 후보는 당선 다음날 첫 행보로 농성장을 찾겠다고 공약했다.

◇ 윤 행장, 출근 막히자 임시 집무실서 업무… 靑, 금융노조에 대화 시도
윤 행장은 출근 첫날이었던 3일과 이후 7일에 본점 출근을 시도하고, 이 외에는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마련한 임시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현재 노조의 출근 저지로 통상 1월 중순에 이뤄지는 임직원·계열사 인사에 차질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임기가 한 달도 안 남은 수석부행장 등 임원 인사와 임기가 끝난 계열사 대표 인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인사 작업은 인사부가 계속 진행하고 있으나, 정상 출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인사 시점은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윤 행장은 전날 있었던 경영현안 보고에서 ‘미-이란 갈등’ ‘필리핀 화산 폭발’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행장은 노조에 대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노조는 청와대와 여당의 ‘낙하산 인사’에 대한 사과가 먼저라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최근 금융노조 측에 대책을 논의하자는 식으로 연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관계자는 "청와대 쪽에서 대화를 하자는 연락이 있었다"며 "구체적인 내용이 오간 것은 아니나,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文 "인사권은 정부에"… 노조 "금융을 정치에 편입시키지 말라" 반발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낙하산 인사 논란과 관련,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 노동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는 민간금융기관, 민간은행장까지 그 인사에 정부가 사실상 개입을 했었기 때문에 낙하산이라는 말이 나왔다"며 "(그러나) 기업은행은 정부가 출자한 국책은행이고 정책금융기관으로, 인사권이 정부에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우리(정부)가 변화가 필요하면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이고 안정이 필요하면 내부에서 발탁하는 것"이라며 "그냥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거부)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은행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노조는 위원장 명의의 성명서에서 "대통령은 야당·후보 시절 낙하산 기업은행장을 반대해놓고, 청와대 낙하산 인사를 은행장에 임명하는가"라며 "대통령 말대로 기업은행 인사권은 대통령에 있고, 노조는 투명·공정한 임명 절차를 바란 것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대통령의 말은 전제가 틀렸다"며 "공기업을 권력에 예속시키지 않고 금융을 정치에 편입시키지 말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조는 "대통령이 집권 초심 잊지 않고 약속을 지켜준다면 기업은행 노조는 모든 저항과 투쟁을 당장 끝낼 것"이라고 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난 세 번의 은행장의 경우 모두 기업은행 내부에서 행장이 선임됐다. 그러나 이번 신임 행장 인사에선 외부 인물인 윤 신임 행장이 선택됐다. 행시 출신인 윤 행장은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등 주요 보직을 맡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엔 홍장표 전 경제수석에 이어 두 번째 경제수석을 지냈다. 청와대는 낙하산 논란에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분들은 우리 정부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 했다.

기업은행 노조의 상급 단체인 금융노조는 지난 2017년 4월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정책협약서를 맺었다. 이 협약서의 1조 2항에는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임명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보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금용노조는 "지난 대선 당시 맺은 정책협약서에는 ‘금융권 낙하산 인사 근절’이 들어가 있는데, 대통령과 민주당은 산업은행장, 수출입은행장에 이어 기업은행장까지 ‘청와대 낙하산’을 임명해 약속을 파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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