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56] 축제의 품격, 국가의 품격

조선일보
  •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입력 2020.01.14 03:1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언젠가 독일인 지인이 해준 얘기다. 준법정신으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독일인이지만 제3세계 휴양지에서는 그야말로 개차반으로 논다고. 세계 제일 법치국가가 드리우는 서슬 시퍼런 규제 속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사는 것이지 실제로는 그리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자조 섞인 고백이었다. 모든 규제가 다 나쁜 건 아닌 듯싶다.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때아닌 동물 축제 광풍이 불고 있다. 화천 산천어 축제에서 살아 팔딱대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환호하는 외국인을 보노라면 적이 착잡하다. 자기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다 '후진국 대한민국'에 와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분별없이 저지르는 추행에 어이가 없다. 어느덧 경제적으로는 세계 10대 강국이건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천박하기 짝이 없는 제3세계 나라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심히 언짢다. 아무리 돈이 좋다지만 국가 비하까지 감수하며 벌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더 이상 외국인들이 몰려와 더러운 욕망을 배설해도 되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최첨단 반도체를 세계 각국에 공급하며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를 선도하는 기술 강국이다. 양궁, 펜싱, 스케이팅 등에 힘입어 줄곧 올림픽 10위권을 유지하는 스포츠 강국이며, BTS의 넘치는 끼와 품격 높은 메시지를 세계 젊은이들이 한글까지 배우며 추종하는 매력적인 문화 강국이다.

윤리철학자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 출간된 지 어언 사반세기가 흘렀다. 덕분에 세계인들은 종차별주의(speciesism)의 모순에 눈을 떴는데, 우리는 거기에 철 지난 인종차별까지 자초하며 시대착오적 향연을 벌이고 있다. 2011년 미국 CNN은 화천 산천어 축제를 세계 7대 불가사의 겨울 축제 중 하나로 선정하며 염장을 질렀다. 옛말에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뛴다'더니, 산천어가 뜨니 송어와 빙어도 덩달아 수난이다. 겨울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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