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문희상의 책을 버렸다

입력 2020.01.14 03:13

최승현 정치부 차장
최승현 정치부 차장
취재하면서 틈틈이 참고하던 책 한 권을 폐지함에 버렸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7년 3월 펴냈던 '대통령'이다. 김대중 청와대 정무수석, 노무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6선 중진 문 의장이 '대통령제' 대한민국의 권력 체계와 각 구성원의 바람직한 역할을 서술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의회주의자'를 자처하며 대통령에 맞선 '국회의 독립적 권위'를 강조한 소신이 돋보였다. 하지만 2018년 7월 정작 국회의장이 되고 나선 책에 쓴 내용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행보를 거듭했으니, 민망해하던 한 독자(讀者)는 더 이상 책을 곁에 둘 수 없었다.

그는 책에서 "국회의장이 헌법이 부여한 독립적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기만 해도 국회 권위는 확 달라질 수 있다"며 "반대로 원칙을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순간 국회가 대통령의 거수기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행태가 반복되는 한, 국회는 그들이 원하는 법을 무조건 통과시켜주는 통법부(通法府)로 전락할 수밖에 없고 그건 국민 불행"이라고도 했다. 2년 9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토록 원했던 공약 1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을 온갖 불법과 '꼼수' 논란 속에서도 기어이 통과시켰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안을 야당 반발에도 일방 처리한 것은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었다. 당연히 '입법청부업자' '청와대 하수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스스로 가장 경계하던 국회의 '통법부' 전락을 앞장서 이끌었다는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이다.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 간 진통이 벌어지던 연말 문재인 대통령은 "20대 국회는 내내 정쟁(政爭)으로 치달았고, 마지막까지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국회를 압박했지만 문 의장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문 의장은 "과정이 길고 고통스러운 대화와 타협 대신 빠르고 편한 걸 찾겠다면 그건 독재밖에 없다"며 "제왕인 대통령이 명령하면 국회는 그저 '네네' 하고 따르는 시녀 역할을 하던 부끄러운 옛 시절로 돌아가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라고도 썼다. 이 표현대로라면, 현재 자신을 두고 '독재'로의 회귀 과정에 '입법부 독립의 최후 보루'인 국회의장이 침묵하며 가담했다는 비판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치권에선 문 의장의 '의회주의자'로서 소신이 아들에게 지역구(경기 의정부갑)를 물려주겠다는 집착 때문에 무너졌다는 말이 나온다. 마침 그 아들은 지난 11일 아버지 지역구 총선 출마를 공식화하며 '그 집 아들'이란 책을 펴내는 북콘서트를 열었다. 권력 세습을 향한 욕망에 '통법부 국회'로 인해 초래될 국민 불행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라면, 문 의장의 40년 정치 인생 또한 부정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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