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문명, 중국은 야만이라던 서양 매체

조선일보
입력 2020.01.11 03:00

갑오

갑오

만국보관 편저이창주 옮김|서해문집
416쪽|2만5000원

'갑오'는 1894년을 말한다. 이해 일어난 청일전쟁을 중국에선 갑오전쟁이라 부른다. 중국의 옛 신문 수집·연구팀인 만국보관(萬國報館)이 영국·프랑스·미국·러시아 등 서양 매체가 청일전쟁 전후로 보도한 300여개 지면을 통해 전쟁 상황을 되짚는다.

청일전쟁은 중국이 침략을 당한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서양 매체에서 중국에 대해 동정하는 보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이 여론 전쟁에서도 승리했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 일본은 종군기자 114명을 초청했다. 미국인 미디어 전문가를 채용해 국가 선전 전쟁의 총지휘를 맡겼다. 서양 매체들은 대체로 일본을 문명으로, 중국은 야만이라는 시각으로 보도했다. 미디어를 전면 활용한 일본이 실제 전쟁과 여론 전쟁에서 모두 이긴 것이다.

영국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894년 11월 24일 자. 청일 양군 전투 장면 삽화에 ‘9월 16일 일본군이 조선 평양성을 함락했다’는 제목을 달았다.
영국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1894년 11월 24일 자. 청일 양군 전투 장면 삽화에 ‘9월 16일 일본군이 조선 평양성을 함락했다’는 제목을 달았다. /서해문집

책은 첫 장을 '동아시아의 화약통: 조선'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청일전쟁은 조선 지배권을 놓고 벌인 대결이자 전장(戰場) 대부분이 조선의 서해와 평택·아산·평양 등 조선 땅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릴뤼스트라시옹'은 1894년 8월 4일 자에서 "조선은 도화선일 뿐만 아니라, 선혈이 낭자하도록 충돌하는 핵심 지역"이라고 보도했다. 정작 조선은 제 운명이 걸린 전쟁이었음에도 무기력하게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사진과 일러스트를 중심으로 당시 기사들을 소개하고 해설을 붙였다. 황해해전 때 중국 군함 치원호가 침몰하는 장면, 일본군이 조선 인천에 상륙하는 모습, 일본군이 아산전투에서 승리하고 한양 부근에 세운 개선문을 통과하는 장면 등 당시 전쟁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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