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로 찾아가는 기자들… 가짜뉴스 바이러스 퍼지기 전 예방교육

입력 2020.01.08 03:24

[진실의 수호자들] [5] 우리 아이들이 위험하다… '뉴스 문맹' 퇴치나선 사람들

美 시민단체 NLP, 33개 매체와 함께 '올바른 뉴스' 소비하기 교육
기자들 온라인 강좌에 학생 14만명 참여, 교사 2만명이 수업에 활용
참가한 학생들 "사실에 근거해 생각… 스스로 바뀌고 있음을 느껴"

앨런 밀러
앨런 밀러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규모와 속도는 인간 인지 능력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인스타그램에는 1분에 4만8000장씩 사진이 올라오고, 트위터 글은 분당 48만건 생성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뉴스 소비 습관을 심어주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뉴스 문맹 퇴치'가 교육계와 언론계의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미국 LA타임스 워싱턴 지국에서 탐사 보도를 담당하던 앨런 밀러 기자가 2006년 딸이 다니던 중학교 초청을 받아 교단에 섰다. 인턴 기자 때 이야기부터 탐사 보도를 통해 미 해군 전투기의 결함과 군납 비리를 폭로한 이야기까지, 언론 보도가 어떻게 장병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지, 저널리즘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정보의 해일이 밀려오던" 당시 그는 이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첫째, 열두 살 딸이 살아가면서 신뢰성과 책임성을 갖춘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둘째, 내 인생을 바친 퀄리티 저널리즘에 감사하고 소비하는 수요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날 밤 딸은 친구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감사 편지를 들고 왔다. 무려 175통. "우리는 편지를 소리 내서 읽었다. 그날 중학교 교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내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3년 전 퓰리처상을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과 깨달음이었다"고 했다. 중학생의 편지가 밀러의 인생을 바꿨다. 아이폰이 등장하고 페이스북이 서비스될 무렵, 그는 워싱턴 집의 지하실에서 '뉴스 문맹'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가 설립한 '뉴스 리터러시 프로젝트'(NLP)는 지금 학생 14만명이 참여한 온라인 강좌 '체콜로지(Checkology)'와, 교사·언론인 수천 명의 네트워크를 가진 '뉴스릿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최대 뉴스 문맹 퇴치 단체다.

"거짓 정보는 유행병이다. 국경도 없다. 세계를 뒤집어 버린다. 시민 생활과 시민 담론, 민주주의를 훼손한다. 거짓 뉴스 소비가 평생 습관이 되기 전에 바이러스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NLP 창립자이자 대표인 밀러는 거짓 정보의 폐해에 대해 속사포처럼 말했다. 그의 표현으로는 '뉴스 문맹 퇴치'와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활용 능력)' 교육은 "사실(fact)에 싸울 기회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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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웨이크필드 고등학교 학생들이 온라인 뉴스 문맹 퇴치 강좌(체콜로지)를 들은 뒤 가짜 뉴스 유형을 칠판에 적어가며 토론하고 있다(왼쪽).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열린 ‘거짓을 멈춰라(STOP HOAX)’ 캠페인에 참가한 아이들이 시민단체 마핀도가 개발한 ‘건강한 인터넷 뱀과 사다리’ 게임을 하고 있다. /NLP·마핀도
그가 내세운 구호는 '편집국에서 교실로(Newsroom to Classroom)'.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버즈피드, 폴리티코 등 33매체와 협력 관계를 맺었다. 강의를 진행하면서 강의 프로그램을 750건 만들었다. 운동을 전국으로 퍼뜨리려고 2016년 5월 온라인 강좌 '체콜로지'를 만들었다. 난도 1~4.5로 이뤄진 60분짜리 강좌는 현직 기자들이 나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뉴스와 오피니언, 프로파간다 구별법을 가르치는 '뉴스란 뭘까' 강좌는 시카고 선타임스의 폴 샐츠먼 기자가 맡았고, '민주주의의 감시자' 강좌에는 워싱턴포스트 웨슬리 로워리 기자가 등장한다.

NBC뉴스 채널의 트레이시 파츠가 맡은 '난도 1' 수준 입문 강의엔 필라델피아 폭우 때 도심 하천에 상어가 출몰한 페이스북 사진을 보여주며 "단지 재미있다고 이걸 공유한다면, 여러분은 거짓 뉴스의 캐리어(carrier)가 되어서 디지털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이라고 들려준다. 최근 5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마다 강좌를 들은 캘리포니아 대니얼퍼마그넷 고등학교 9학년 디에고 에르난데스는 인터뷰 영상에서 "잘못된 정보는 세상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좀 더 사실에 근거해서 생각하게 됐고, 나 스스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밀러 대표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어떤 뉴스 소스를 믿거나 믿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뭘 믿고 뭘 공유할지 아는 데 필요한 도구를 주는 노력"이다.

'체콜로지'에는 현재 미국에서만 교사 2만명이 강의를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 등록했고, 뉴욕 시내 중학교 174곳에는 온라인 수강용 아이디 6만8000개가 지급됐다. 스페인어판도 만들어졌다. 밀러 대표는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생존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면서 "미국 전체 학생의 10%인 300만명이 매년 이 강의를 듣도록 2022년까지 정규 교육과정에 편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뉴스 해독자의 국가별 비율 그래프

이런 움직임은 세계적이다. 핀란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미디어 활용 교육 성격이 강했던 '미디어 리터러시'를 디지털 세계에서 참과 거짓 뉴스를 구별할 줄 아는 '디지털 문맹 퇴치' 교육으로 전환 중이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도 2018년 발간한 '저널리즘, 거짓 뉴스, 허위 정보'에서 별도 챕터를 마련해 각 나라 현실에 맞게 변형해 활용할 수 있는 슬라이드와 읽기 자료 등을 모은 뉴스 문맹 퇴치용 교육 지침까지 소개했다. 자연재해 관련 거짓 뉴스로 홍역을 앓는 인도네시아 NGO '마핀도'는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기 전에 확인하라' '당신의 손가락을 조심하라' 등 거짓 뉴스 전파자가 되지 않는 방법을 가르친다.

☞뉴스 문맹

2016년 미국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인신매매에 연루됐다는 소문을 믿고 피자 가게에 총질한 에드거 매디슨 웰치는 소셜미디어상 허위 정보와 풍자, 과장을 실제 사실과 분간 못하는 ‘뉴스 문맹(文盲·illiteracy)’이었다. 파키스탄에선 국방부 장관이 거짓 뉴스를 믿고 “이스라엘이 핵 보복을 위협했다. 우리도 핵을 갖고 있다”는 글을 띄웠다. 유발 하라리나 티머시 스나이더 같은 석학들은 “인류의 뉴스 문맹이 파시즘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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