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연속… 고통은 그의 기타를 완성시켰다

조선일보
입력 2020.01.08 03:00 | 수정 2020.01.08 17:35

[영화 리뷰]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

세상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고통과 슬픔의 썰물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우린 마음 둘 한곳을 발견한다. 23일 개봉하는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감독 릴리 피니 자눅)은 세계적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에릭 클랩튼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에릭 클랩튼이라는 다섯 글자 이름에 사람들이 품을 다양한 기대와 설렘을 이 영화는 여러 번 배반한다. 음악 영화지만 음악만을 넘치게 담지 않았으며,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엮었지만 처음 튕겨본 기타줄처럼 새롭다. '기타의 신'이라는 제목도 반어(反語·irony)다. 신이라 불릴 만큼 대단한 뮤지션은 이 영화에 없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등을 만든 여성 감독 릴리 피니 자눅은 134분짜리 필름을 통해 우리는 결코 신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어떤 노래는 절정의 현란함을 버릴 때 완성된다. 영화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은 눈부신 프레이즈를 빚어내는 클랩튼의 손가락을 비추는 대신, 잠잠히 그의 그늘과 터널을 따라간다.
어떤 노래는 절정의 현란함을 버릴 때 완성된다. 영화 ‘에릭 클랩튼: 기타의 신’은 눈부신 프레이즈를 빚어내는 클랩튼의 손가락을 비추는 대신, 잠잠히 그의 그늘과 터널을 따라간다. /진진
클랩튼의 엄마는 그를 낳자마자 가출했다. 아이는 할머니 손에서 길러졌고 아홉 살쯤에 만난 엄마는 "날 엄마로 부르지 말라"고 말한다. 분노는 소년을 키웠다. 골방에 처박혀 쉬지 않고 두들긴 기타는 그를 벼락 스타로 만들었다. 비틀스와 공연했고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 비비 킹 같은 이들이 클랩튼에게 매료된다. 많은 이가 연주 비결을 묻고, 담벼락엔 '에릭 클랩튼은 신이다'라는 낙서가 속출한다. 이 과정에서 보는 이는 지미 헨드릭스나 척 베리 같은 이들과 클랩튼이 합주하는 기막힌 순간들과 마주치게 된다.

심장이 함부로 뛰는 듯한 흥분이 지나가고 나면, 이후엔 많은 이가 아는 그늘의 시간이 찾아온다. 조지 해리슨의 아내인 패티 보이드에게 빠져들었고, 반복되는 거절과 상실 속에서 '레일라' 같은 노래를 지었다. 인기가 치솟았으나 마약을 끊지 못했고 쉬지 않고 술을 마셔댔다. "자살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자살하면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후 사고처럼 만난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코너를 낳았지만, 아이는 미국 뉴욕 53층 고층 아파트 난간에서 추락한다. 클랩튼은 노래를 쓴다. 그래미 상 세 개를 그에게 안긴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이다.

영화 후반부, 주름이 팬 얼굴로 클랩튼은 말한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의 경험이 날 지금 이곳으로 데려왔다"고. 기교도 반전도 없어서 더 위대하다. 익숙하고 뻔한 자료 화면과 흐릿한 자료 사진을 얽어놓은 필름처럼 보이지만, 릴리 피니 자눅 감독은 촘촘하고 사려 깊게 클랩튼이란 인물을 통해 우리 안의 어둠과 빛을 비춘다. 무릎 꿇을 때, 내려놓을 때, 눈물 흘릴 때, 누군가는 완성된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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