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정부 편 안드는 '팩트 자경단' 200곳… 모두 시민의 힘

입력 2020.01.06 03:00

[진실의 수호자들] [4] 가짜뉴스 잡는 美 시민단체

'진실 갈구' 시민들 자발적 후원
4만2000명이 149만불 펀딩도… 팩트체킹 단체 5년새 4배 급증
정치인 '거짓 폭격'에 검증 맞서 진실~완전거짓까지 6단계 판정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팩트 체킹(사실 확인) 전문 기관 폴리티팩트는 정치인 발언을 감시해 사실 여부를 평가하고 공개하는 일을 한다. 정치인의 주요 발언을 골라 '참'부터 완전한 거짓을 뜻하는 '엉덩이에 불붙었다'까지, 여섯 단계 진실 지수를 매겨 홈페이지에 올린다. 이들은 정적(政敵) 사이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과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지난해 말 발언에 똑같이 '엉덩이에 불붙었다'란 '딱지'를 붙였다. 지난달 만난 폴리티팩트 앤지 홀런 대표는 "완전히 중립적인 기관으로서 사실 여부만을 판명해 공개하는 것이 임무"라고 말했다.

폴리티팩트의 트럼프 발언 팩트체크 사례 그래픽
폴리티팩트는 전액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가 세운 자선 단체 '민주주의 펀드'가 20만달러를 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돈을 일반 시민들이 냈다. 일반 시민이 십시일반으로 폴리티팩트에 기부한 돈은 2017년 약 20만6000달러에서 2018년 24만2000달러로 늘었다. 이처럼 시민이 지원하는 팩트 체킹 독립 기관이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홀런 대표는 "정치가 극단적인 당파성을 보이고 일부 언론이 여기에 편승한 결과"라고 말했다.

2007년 설립된 폴리티팩트는 2008년 미 대선 당시 후보들의 발언 750여 개를 팩트 체킹한 공을 인정받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제 정치 뉴스 팩트 체킹의 세계화를 실현한 선구자이자 개척자다. 홀런 대표는 "거짓 정보가 창궐하는 시대에 정치권의 정파성은 전에 없이 극심해지고 있다"며 "이런 시대일수록 정치·정부·자본 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중립적 판단자'로서 우리에게 거는 시민사회의 기대가 커지는 듯하다"고 했다.

맨 위 사진은 2018년 7월 러시아가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만든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의 가짜 계정. 눈길을 끌기위해 허위정보에 만화 스펀지밥 이미지를 넣었다(가운데). 러시아 국영 언론사 ‘러시아투데이(RT)’가 이 계정에서 나온 허위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맨 아래).
맨 위 사진은 2018년 7월 러시아가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두고 만든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의 가짜 계정. 눈길을 끌기위해 허위정보에 만화 스펀지밥 이미지를 넣었다(가운데). 러시아 국영 언론사 ‘러시아투데이(RT)’가 이 계정에서 나온 허위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맨 아래). /DFR랩

1600명 넘는 후원자가 폴리티팩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폴리티팩트는 이 모임에 '진실 대대(Truth Squad)'란 별칭을 붙여주었다. 폴리티팩트 기부자인 엘리자베스 이저벨은 트위터에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풀어놓는 틀린 정보들에 분통을 터뜨리다가 'TV를 보고 욕만 하느니 (사실을 확인해 공표하는) 폴리티팩트에 힘을 보태자'는 생각에 후원을 결심했다"고 했다. 폴리티팩트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 단체로부터는 기부를 받지 않는다.

비영리 팩트 체크 기관인 '스놉스'는 팩트 체킹 분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컴퓨터 전문가 데이비드 미켈슨 부부가 1994년 도시 괴담과 민간 구전 설화 등을 확인하면서 시작했다. 팩트 체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영역을 확장했다. 2016년 미 대선 당시 사회문제를 일으킨 이른바 '피자 게이트'에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워싱턴 DC 한 피자집 지하의 소아 성애 조직을 지원한다는 소문이 온라인으로 확산했다. '스놉스'는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게시물을 속속들이 분석해 왜 이 소문이 가짜인지를 객관적으로 밝혀냈다. 스놉스 역시 후원자들의 지지로 운영된다. 2017년부터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후원을 받고 있다. 4만2000명이 149만달러를 후원했다. 200달러를 후원한 론 코헨은 "스놉스는 우리 모두를 겨냥한 끈질긴 거짓 폭격에 맞서는 해독제"라고 후원 이유를 밝혔다.

미 비영리 싱크탱크가 '가짜'를 폭로하는 데 힘을 보태기도 한다. '비정파성'을 내세운 워싱턴 DC 애틀랜틱카운슬의 디지털 관련 연구소인 DFR 랩은 미국·영국 선거 등을 교란하기 위해 러시아 계정 수백 개가 소셜미디어에서 활동했음을 지난해 폭로했다. 러시아가 구(舊) 소련 시절 쓰던 국외 프로파간다 확산 기법을 온라인에서 비슷하게 활용한다는 사실이 DFR 랩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미 유권자들이 소셜미디어에 떠도는 정보를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200개가 넘는 팩트 체킹 기관이 전 세계적으로 활동 중이다. 듀크대 언론연구소인 '리포터스랩' 집계 결과 5년 전의 4배 수준으로 늘었다. 과거엔 기성 언론이 대부분 운영했으나 지난 몇 년 동안 독립적인 비영리 조직이 많이 늘었다. 미국 기준으로 5년 전 미 팩트 체킹 기관 중 연구소를 포함한 비영리 기관이 13% 수준이었는데 지난해엔 43%로 늘었다. 기성 언론의 정파성이 비영리 단체의 객관적 사실 확인에 전보다 큰 비중이 실리게 된 원인이란 지적도 나온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 카일 포프 편집장은 "최근 주요 신문사의 수익 모델이 광고료에서 온라인 구독료 위주로 바뀌면서 언론사들이 자사 독자층의 '정치적 입맛'에 맞춘 정파적 기사를 전보다 많이 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시민 스스로 일종의 '팩트 자경단(自警團)'을 만들어 객관적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점점 확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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