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가 진짜보다 6배 빨리 퍼진다… 인류 파괴하는 '거짓 정보'

입력 2020.01.01 01:45

[조선일보 100년 / 진실의 수호자들] [1] 저널리즘의 도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와의 전쟁
美대선때 '힐러리가 아동성매매 조직 운영' 거짓정보로 총기난사
인도네시아, 쓰나미 복구 때'또 지진 온다' 퍼지며 이재민들 노숙
소셜미디어 타고 대중 현혹… 팩트 왜곡사회 종착점은 '전체주의'

시난 아랄 美 MIT 교수(왼쪽), 제러미 캐플런 뉴욕시립대 교수
시난 아랄 美 MIT 교수(왼쪽), 제러미 캐플런 뉴욕시립대 교수
시난 아랄 미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가짜 뉴스의 전파 속도를 실증 분석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때 트위터에서 많은 가짜 뉴스가 오가는 데 놀라 시작한 연구였다. 트윗 450만여 건을 분석해 보니 가짜 뉴스가 퍼져 나가는 속도가 진짜 뉴스보다 약 6배 빨랐다.

아랄 교수는 '참신함의 가설'을 이유로 들었다. "인간의 주의력은 새로운 것에 끌린다. 가짜 뉴스는 상당수 새롭다고 느껴진다. 가짜 뉴스의 새로움은 대부분 놀라움과 분노로 이어진다. 새 정보를 알리면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사회적 우위를 획득한다. 그래서 자꾸 공유한다." 가짜 뉴스의 전파가 빠르다는 것은 놀라움과 분노가 그만큼 확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짜 뉴스의 확산은 분노의 확산이다. 반면 진실을 접했을 때는 기대감, 기쁨, 신뢰의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가짜 뉴스의 파급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2016년 미 대선이다. 아랄 교수는 "유권자 27%가 러시아발(發) 가짜 뉴스에 노출됐고 페이스북에서만 약 2억2600만이 거짓 게시물을 보았다"며 "이것은 미친 수치"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유포자를 비롯한 당시 가짜 뉴스 조작 세력은 주로 미국의 경합 주(州)를 공략해 미 대선을 교란했다. '동성애 조직을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지원했다' '클린턴이 피자 가게 지하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는 가짜 뉴스도 전파됐다. 가짜 뉴스를 진짜로 믿은 한 청년이 피자 가게를 찾아가 총을 쏘아대 처벌받았다. 일명 '피자게이트'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아랄 교수는 "가짜 뉴스가 유권자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DFR랩' 그레이엄 브루키 센터장은 동유럽 몰도바의 사례를 소개했다. 지자체장 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가 중국이 홍콩을 영국에 할양했듯이 도시를 이슬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에 50년 동안 임대하기로 했다는 동영상이 돌았다. 몰도바는 동방정교의 나라다. 유권자가 50만명인 도시였는데 영상 조회 수가 60만을 기록했다. 동영상이 가짜라고 보도한 현지 신문 구독자는 10만명에 불과했고 후보는 낙선했다.

시난 아랄 MIT 교수에 따르면 정보 격차가 심한 개발도상국일수록 가짜 뉴스의 해악은 더욱 크다. 정보 격차로 다음과 같은 사례도 발생했다.

인도네시아는 2018년에도 쓰나미 피해 복구 과정에서 '진도 8.1 강진이 뒤이어 온다'같은 가짜 뉴스가 퍼졌다. 많은 이재민이 집에 갈 수 있는데도 수개월 동안 겁에 질려 노숙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스마트폰이 보급될수록 거짓으로 인한 2차 재난이 커지고 있다. 제대로 된 정보를 공급하는 저널리즘이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재해가 빈번한 일본에서 가짜 뉴스로 인한 2차 재난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은 저널리즘이 재난의 방파제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에선 지난 9월 한 교사가 원주민 학생을 '원숭이'라고 불렀단 얘기가 와츠앱(스마트폰 메신저)을 통해 번졌다. 거짓이었지만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3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도의 작은 마을 라인파다의 주민은 와츠앱을 통해 퍼진 거짓에 현혹돼 관광객 다섯 명을 때려죽였다. '괴한이 어린아이를 납치해 장기 매매를 한다'는 헛소문이었다.

DFR 랩의 브루키 센터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예전의 루머는 보통 가족, 친구처럼 당신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달됐다. 잘 모르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기술은 당신이 전혀 모르는, 완전히 낯선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게 한다. (인간관계의 신뢰가 아니라) 소셜미디어에 찍힌 숫자들, 팔로어나 '좋아요' 숫자가 신뢰를 만든다. 아무나 당신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 훨씬 위협적이다."

미 팩트 체크 전문 기관 '폴리티팩트' 앤지 홀런 대표는 "현실에서 거짓은 죄악시되지만 익명의 공간에선 조작된 정보가 주저함 없이 퍼져 나간다"고 말했다.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세력이 유발하는 것은 사회 혼란이며 겨냥하는 것은 민주주의다. 뉴욕시립대 저널리즘 대학원 제러미 캐플런 교수는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은 사실을 근거로 타협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타협은 '이것 봐, 이런 팩트를 보면 정책이 우리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나오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바꿔야지'라는 식으로 진행된다. 팩트를 부정하면 타협점을 찾을 방법이 사라진다. 심지어 타협해야 할 이유조차 사라지는 세상이 온다." 그는 "그런 사회의 종착점은 결국 전체주의"라고 말했다.


☞저널리즘과 거짓 정보

가짜 뉴스(fake news)는 기사(記事) 형식으로 유포하는 거짓 정보를 의미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대중화되면서 소문 형태로 퍼지는 경우가 많아 학계에서도 명확한 정의를 정립하지 못했다. 인공지능 기술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가짜 영상)과 합성 사진도 가짜 뉴스의 일부다. 독일 나치가 1920년대 언론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한 '거짓말쟁이 언론(뤼겐프레세·Lügenpresse)' 표현이 가짜 뉴스의 시초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저널리즘은 보도·논평 활동을 뜻한다. 하지만 가짜 뉴스 확산으로 권력에 대한 감시·견제뿐만 아니라 소문의 진위를 판별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선진국은 저널리즘을 국가의 근간으로 간주한다. 미국은 언론 자유를 막는 법 제정을 금지한 수정헌법 1조, 한국은 헌법 21조 1항을 통해 언론 자유를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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