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신춘문예] 절벽 끝에 선 사람들

조선일보
  • 김준현
입력 2020.01.01 03:01

희곡 당선작

등장인물

주인 50대 중반, 끝내주는 절벽의 매표소를 운영 중

기자 20대 중반, 끝내주는 절벽에 죽으러 온 척 취재를 옴

노인 80대 초반, 독거노인

청년 30대 초반, 취업 준비생

경찰 30대 초반, 은퇴한 경찰

시간 여름, 석양이 지기 시작할 무렵에서 해가 지기까지

공간 날씨 좋은 끝내주는 절벽

무대 좌측에는 매표소와 나무가 서 있다.

우측에는 낡은 차 한 대가 서 있다. 차는 앞쪽이 객석을 향하고 있다.

뒤편은 낭떠러지다.

[2020 신춘문예] 절벽 끝에 선 사람들
일러스트=김영석
개막

카메라 가방을 멘 기자가 매표소의 문을 두드린다.

매표소 창문이 열린다.

주인 몇 분이세요.

기자 한 명요.

주인 어떤 거 하실 거예요?

기자 아, 제가 아직 결정을 못 해서.

주인 절벽은 5만원 나무는 7만원 차는 10만원요.

기자 혹시 어떤 게 좋은지 추천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주인, 매표소 창문을 닫는다. 그리고 매표소 문을 열고 나온다.

주인 혹시 평소에 어떻게 죽고 싶다 뭐 이런 거 생각해 둔 거 있어요?

기자 아뇨, 딱히.

주인 하긴, 마지막에 어떻게 갈지 정하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죠.

(나무를 가리키며) 첫 번째는 저희가 의자랑 밧줄을 하나 드릴 건데, 여기다 목을 매시면 되고요.

기자 목을 매면 너무 고통스럽게 죽지 않을까요?

주인 아, 그렇게 오해들 하는데 그렇지가 않대요. 고통 느끼기도 전에 그냥 숨이 뚝 끊어져 버리니까. 게다가 목뼈가 뚝 부러지면서 오르가슴까지 느낀다더라고. 좀 황홀하게 가고 싶으면 이거 추천 드리고.

기자 혹시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주인 웬 사진?

기자 제가 평소에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요. 마지막 가는 길에….

주인 하긴, 마지막 가는 길에. 찍으세요.

기자, 나무를 찍는다.

기자 네. 다음은?

주인, 무대 뒤편으로 기자를 안내한다.

주인 다음은 절벽인데, 그냥 뛰어내리면 돼요. 밑에 바다도 있고. 좀 낭만적인 사람들이 이걸 선호하더라고. 가슴에 좋은 풍경 담고 간다고. 오늘 날씨도 좋고 그러니까,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면 여기도 추천 드리고.

기자, 절벽 풍경과 절벽 아래 사진을 찍는다.

주인 (자동차 쪽으로 걸으며) 다음은 요 차인데. 요건 이제 번개탄 피워서. 아무래도 청소하기도 번거롭고 번개탄 값도 있고 하다 보니까 이건 좀 비싸.

술 취한 노인이 술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등장한다. 기자는 자동차를 찍는다. 노인, 딸꾹질을 하다가 절벽 쪽으로 걸어간다.

주인 저 어르신, 매표소는 이쪽인데요.

노인은 멈춰 서서 주인을 응시하다가 이내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주인은 노인을 붙잡아 세운다.

주인 매표소는 이쪽이라니까요.

노인이 주인을 쏘아본다.

노인 매표소? 무슨 매표소.

주인 여기까지 찾아오실 정도면 다 알고 오셨을 거 아닙니까.

노인 요즘에는 절벽 구경하는 것도 돈 내고 하냐?

주인 구경요? 참, 어르신, 여기 그런 거 하는 데 아니니까 얼른 내려가세요.

노인이 주인의 손을 뿌리친다. 노인은 계속 절벽 쪽으로 가려 한다. 주인이 다시 붙잡는다.

노인 이거 안 놔?

주인 손님이 와 계셔서요. 부탁드립니다.

노인 손님은 얼어 죽을.

노인이 주인을 때릴 듯이 술병을 꽉 움켜쥔다. 그때, 기자가 노인과 주인을 찍는다. 플래시가 터진다. 노인이 기자 쪽을 노려본다.

노인 뭐여. 지금 사진 찍은 거여?

기자 아니 그게….

노인이 갑자기 기자에게 달려든다. 술병을 휘두른다. 기자는 피하다가 쓰러진다. 순간 노인을 놓쳤던 주인이 노인을 제압한다. 노인이 술병을 놓친다.

주인 이 노친네가 진짜. 손님, 괜찮으세요?

기자 네.

노인 놔, 놓으라고 제발. 오늘이 기일이란 말이야. 내가 마누라한테 술 한 잔 올리겠다는데 왜 이렇게 지랄 염병들을 하는 거야.

주인 기일이면 성묘를 가거나 하셔야지 왜 남이 장사하는 데 와서 이렇게 꼬장을 부리세요?

노인 여기다 뿌렸으니까. 화장해서 여기다 뿌렸으니까.

주인, 노인을 풀어준다.

주인 죄송합니다. 제가 여기서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요.

노인은 힘없이 앉아 있다. 주인이 노인에게 술병을 주워다 준다. 노인이 힘겹게 일어선다.

노인 괜찮여.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술만 올리고 갈 테니까 좀만 기다려.

노인이 절벽 앞으로 가서 술병을 내려놓는다.

노인 임자, 같이 한잔혀.

노인이 절을 하기 시작한다.

주인 죄송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죠.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노인이 두 번 반 절하고 절벽 끝에 선다.

주인 어르신!

수상한 낌새를 느낀 주인이 노인 쪽으로 달려간다.

노인이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간발의 차이로 주인이 노인을 붙잡고 끌어올린다.

노인이 끌어올려지며 중얼거린다.

노인 왜 붙잡아. 마누라 보러 가는데 왜 붙잡아.

주인 어르신, 가는 길이 아무리 급하셔도 이렇게 가시면 안 되죠.

노인 어차피 집에 돌아가도 아무도 없어. 마누라밖에 없었는데 이젠 아무도 없다고.

주인 그게 아니고, 돈은 내고 가셔야죠.

노인 돈?

주인 여기서 자살하시려면 돈을 내셔야죠. 절벽은 5만원입니다.

노인 그게 무슨 미친 소리여?

주인 돈 없으시면 다른 데 찾아보시고요.

노인이 주인을 때리기 시작한다.

주인 아, 아, 씨.

기자가 달려와 노인을 말린다. 노인은 기자를 뿌리치고 기자의 머리끄덩이를 잡는다.

그때, 무대 좌측에서 경찰과 청년이 등장한다. 경찰은 다리를 전다. 두 사람은 매표소 앞에 멈춰 선다.

경찰 거기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서로 뒤엉켜 있던 기자와 주인과 노인이 일제히 경찰을 바라본다.

청년은 가만히 서 있고 경찰이 성큼성큼 세 사람에게로 다가간다.

노인이 기자의 머리카락을 놓는다.

주인 아니 이 할아버지가 뛰어내리려고 하셔서 말렸더니 갑자기.

노인 이, 이 미친놈이….

노인은 얼굴이 벌게져서 말을 더듬는다.

기자 이 아저씨가 살려줬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때렸어요.

경찰 어르신, 사람을 때리시면 어떡합니까. 그것도 죽을 뻔한 거 살려준 사람을.

노인은 씩씩거리기만 한다.

경찰 어르신 일단 내려가세요. 위험하니까 일단 내려가세요.

기자가 술병을 주워다가 노인에게 안겨준다. 노인은 술을 쭉 마셔 병을 완전히 비우더니 절벽 밑으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벌떡 일어선다.

경찰 자, 자. 얼른 가세요.

경찰이 노인의 어깨를 슬슬 밀며 절벽 아래로 유도한다. 하지만 노인을 따라가지는 않고 제자리에 서 있다. 노인은 무대 오른편으로 비틀거리며 퇴장한다.

청년은 매표소 앞에서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고 있다. 매표소 창문을 슬쩍 열어 안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주인 따라가 보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경찰 아니요, 근무 시간도 아닌데요, 뭐.

기자 할아버지 또 죽으려고 하면 어떡해요?

경찰 제가 그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기자 경찰이잖아요.

경찰, 뒷머리를 긁적인다.

경찰 (주인에게) 2시에 예약했었는데요.

(사이)

2020 신춘문예] 절벽 끝에 선 사람들
주인 아, 예약요. 깜짝 놀랐네. 차로 가기로 한 분 맞으시죠?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주인이 경찰을 매표소 쪽으로 안내한다.

주인 (매표소로 향하다 문득 멈춰 서서) 아가씨, 몰래 떨어지고 그러면 안 돼. 저승까지 쫓아가서 돈 받아낼 거니까.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이 달려서 매표소 안으로 들어간다. 경찰이 절뚝거리며 천천히 뒤따라가 청년 옆에 선다.

주인 두 분 같이 오신 건가요?

청년 아니요.

주인 (청년에게)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예약 손님이시라서요.

청년 네.

주인 (경찰에게) 10만원입니다.

경찰이 주머니에서 돈 봉투를 꺼내 매표소 안의 주인에게 건넨다.

기자는 절벽 쪽에 서서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주인이 매표소 창문을 통해 경찰에게 번개탄과 라이터, 그리고 수면제를 넘겨준다.

경찰은 자동차 쪽으로 걸어간다. 절뚝인다. 가면서 수면제를 삼킨다.

주인 다음 분.

청년 나무로요.

주인 7만원요.

매표소 창문 사이로 밧줄, 접이식 의자와 돈 봉투 교환이 이루어진다.

청년은 곧장 나무로 가 가지에 줄을 묶기 시작한다.

기자는 자동차에 번개탄을 싣는 경찰과 청년을 번갈아 촬영한다.

경찰은 라이터를 켜려고 한다. 기름이 떨어졌는지 불이 붙지 않는다. 경찰이 매표소로 돌아간다.

경찰 (라이터 부싯돌을 돌리며) 혹시 다른 라이터 없나요?

주인 (경찰에게 라이터를 넘겨받아 부싯돌을 돌려보고는) 아, 잠시만요.

(사이)

주인 담배 안 피우세요?

경찰 네. 와이프가 싫어했거든요.

주인, 매표소에서 나온다.

주인 (청년에게) 손님, 혹시 담배 안 피우세요?

청년 네.

주인 (기자에게) 손님은요? 라이터 없으세요. 라이터?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던 기자는 고개를 젓는다.

주인 아, 이걸 어떡하지.

경찰 하나도 없어요?

주인 죄송합니다, 손님. 미리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아, 어제 번개탄 사올 때 같이 하나 사올 걸 그랬네.

경찰 벌써 약 먹어버렸는데.

주인 제가 지금 금방 가서 사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주인, 연신 고개를 숙이며 무대 왼쪽으로 달려서 퇴장한다. 경찰은 하품한다.

경찰 아, 벌써 졸린데. 큰일 났네.

경찰은 청년에게 다가간다. 청년은 막 목에 매듭진 줄을 건 참이다.

청년 (경찰에게) 먼저 가겠습니다.

경찰은 고개를 돌린다. 청년은 의자를 차고 목을 매단다.

플래시와 함께 찰칵 소리가 난다.

경찰이 절벽 위에 서 있는 기자를 바라본다. 기자는 사진이 잘 찍혔나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기자에게 다가간다.

경찰 뭐 그런 걸 찍어요.

기자 여기서 사람이 죽었다는 걸 기록하는 거예요.

경찰이 절벽 끝에 걸터앉는다.

경찰 기록은 무슨.

기자 누군가는 알아야죠.

경찰 주인 아저씨가 알잖아요. 어차피 그 카메라 두고 가도 사진 다 지우지 않겠어요?

기자 홍보용 사진으로 쓸지도 모르죠.

경찰은 웃는다.

경찰 그렇게 남들이 알아주길 바랐으면 왜 굳이 여기까지 왔어요? 돈까지 내 가면서.

기자, 경찰 옆에 걸터앉는다.

기자 돈 아직 안 냈어요.

경찰 그럼 지금 몰래 떨어지면 되겠네. 그럼 공짜잖아.

기자 저승까지 쫓아온다잖아요.

기자와 경찰은 같이 웃는다.

기자 그리고 이 와중에 돈이 중요한가요?

경찰 그건 그렇네요.

기자 왜 그런 옷을 입고 오셨어요?

경찰 경찰이니까요.

기자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잡혀가는 줄 알고.

경찰 경찰이 오면 안심을 해야지 놀라긴 왜 놀라요.

기자 나쁜 짓 하러 왔으니까요.

경찰 나쁜 짓일까요?

기자는 경찰의 얼굴을 보고만 있다.

경찰 나쁜 짓이라고 하면 좀 억울하지.

기자 그런가요?

경찰 내가 강력계에서 10년을 있었어요. 거의 매일 야근에, 못 볼 꼴도 많이 봤지. 한번은 지 애인 때려죽인 헬스 트레이너 놈 잡다가 3층에서 떨어졌어요. 복도에서 막아섰는데 날 그냥 들더니 밖으로 집어 던져버리더라고. 테이저건을 쐈는데, 이게 발사가 안 됐어요. 고장 나서. 그래서 다리 작살나고 경찰 생활 못 하게 됐죠. 그런데 다리 수술비를 나라에서 안 대주더라고. 마누라는 바람나서 도망가고.

(사이)

경찰 야근 안 하고 꼬박꼬박 집에 잘 들어갔으면 마누라는 남았으려나? 아니면 나라에 좀 더 충성했으면 수술비를 대줬으려나? 그건 아니잖아요? 나를 소모품처럼 대해놓고 닳아 없어진 다음에 나쁜 짓 했다 소리하면 좀 그렇지.

경찰이 하품한다.

기자 피곤하세요?

경찰 번개탄 땔라고 약 먹었거든요. 주인 양반은 왜 이렇게 안 와. 이러다 자겠네.

기자 꼭 저 차가 아니어도 상관없잖아요?

경찰 그렇게 따지면 돈까지 내면서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었나요? 내가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기자 어차피 이제 돈 쓸 데가 없으니까요.

경찰은 웃는다.

경찰 그것도 그런데. 그것보다는, 확실히 하기 위해서예요. 지금 하려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고. 누군가가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것뿐이라고. 그렇게 확실히 믿고 싶어서요. 자살 명소라는 게 괜히 생기는 게 아니죠. (하품을 하며) 또 돈을 냈으니 내가 내 목숨 산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기자 목숨 값 한번 싸네요.

경찰 언젠 뭐 비싼 인생이었나요. 월급도 싸고, 사랑도 싸고. 아가씨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저 청년도. 싼 건 버리기 쉽잖아요. 잃어버려도 안 아깝고. 목숨 값이 싼 덕에 별 고민 없이 편하게 가는 거죠. 내가 말을 너무 쉽게 하나?

경찰, 꾸벅꾸벅 존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기자는 경찰을 붙잡아 겨우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기자는 경찰을 눕혀 놓는다.

기자 아저씨, 아저씨!

기자는 경찰의 뺨을 철썩철썩 두 번 때린다. 무대 왼편에서 주인이 달려 들어온다.

주인 예약 손님! 라이터 가져왔습니다.

기자 잠들었어요.

주인 흔들어도 안 일어나세요?

기자, 다시 한 번 경찰의 뺨을 두 번 때린다. 경찰, 코를 골기 시작한다.

주인 큰일 났네 이거. 이러면 찝찝한데. (기자에게) 일단 옮깁시다.

주인, 경찰의 상체를 들어 올린다.

주인 다리 좀 들어주실래요?

기자, 어리둥절해하면서 경찰의 다리를 든다.

주인 하나, 둘.

둘은 경찰을 자동차 조수석에 앉힌다.

주인이 차 문을 닫고 트렁크에 세팅된 번개탄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트렁크를 닫는다.

기자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주인 주무시니까요.

기자 이건 살인이잖아요.

주인이 굳은 표정으로 기자 앞에 가까이 다가선다.

주인 고객 서비스죠, 손님.

주인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주인 (미소 지으며) 이렇게 확실히 끝내 드리니까 사람들이 저를 찾는 거죠. 뭐 할지 결정하시면 불러주세요. 전 안에 들어가서 잠깐만 쉬겠습니다.

주인, 매표소로 들어간다. 기자는 차 안에서 자고 있는 경찰을 찍는다. 나무 쪽으로 다가가 청년도 찍는다. 플래시가 터진다.

청년 (얼굴을 찌푸리며) 아오, 눈부셔.

기자는 깜짝 놀라 나자빠진다.

청년 뭐 하세요?

2020 신춘문예] 절벽 끝에 선 사람들
기자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 나무에 매달려서 말하는 청년을 바라본다.

청년 의자 좀 세워 줄래요?

(사이)

빨리요.

기자는 일어서서 청년의 발밑에 의자를 세워준다. 청년은 의자를 딛고 선다. 그리고 목에 걸린 밧줄을 풀러 낸다. 그러고는 다시 매듭을 묶기 시작한다.

기자 어떻게 된 거예요?

청년 목이 안 졸렸어요. 매듭을 잘못 묶었나 봐요.

기자 그게 말이 돼요?

청년 그럼 뭐 돈 받고 자살시켜주는 건 말이 되나요? 죽은 사람 사진 찍는 건 말이 되고?

기자 죄송해요. 그냥 이런 걸 널리 알리고 싶어서요.

청년 (코웃음 치며) 널리 알려? 기자라도 돼요?

기자 기자 맞아요.

청년 기자가 취재도 해요?

기자는 대답이 없다.

청년 인턴, 정규.

기자 인턴.

청년 진짜, 회사에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구먼. 하긴 나도 어떻게든 직장 가져볼라고 별 지랄을 다 했으니까.

청년, 매듭을 완성 짓고 고리를 다시 목에 건다.

청년 괜찮으면 고개 좀 돌려줄래요?

기자는 뒤로 돌아선다.

청년 기사 잘 쓰시고요.

청년은 다시 목을 매단다. 기자는 다시금 사진을 찍는다. 기자의 휴대전화가 울린다. 주인이 매표소에서 나온다. 기자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주인 기자시라고요?

기자 네?

주인 기자시냐고요.

기자 네.

주인이 기자를 노려본다.

기자 기자가 자살하러 올 수도 있죠.

주인이 천천히 기자에게 다가든다.

기자 왜, 왜요?

기자,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주인 왜 자꾸 사진을 찍나 했더니….

기자 아니, 그게 아니라.

기자는 계속 천천히 물러나고 주인은 계속 다가온다.

주인 사업 망하고 다시 이렇게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걸 기사로 쓰겠다고?

기자 아니 진짜 제가 죽으러 온 건데요. 사진은 그냥 취미로….

기자의 등이 차에 닿는다.

주인 그럼 어떻게 죽든지 상관없잖아?

바닥에 주저앉아 빌기 시작한다.

기자 살려주세요. 여기서 있었던 일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요.

기자는 목에 걸린 카메라 줄을 풀고 카메라를 내민다.

기자 가져가세요. 사진 거기 있는 게 다예요.

주인은 말없이 계속 다가온다. 기자는 카메라 가방을 뒤져 녹음기도 꺼낸다.

기자 여기 녹음기도 드릴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주인 녹음까지 했어?

기자는 차 문을 두드린다.

기자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주인이 기자의 목을 조른다. 점차로 어두워지던 무대가 한층 더 어두워진다.

주인 걱정 마. 금방 끝나. 나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가 없어.

거의 인물들의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때 무대 오른편에서 양손에 화염병을 잔뜩 든 노인이 등장한다.

기자는 캑캑 거리며 노인 쪽으로 손을 뻗는다.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표소 쪽으로 가 화염병에 불을 붙인다.

쨍그랑 소리가 나고 매표소에 불이 붙는다. 무대가 갑자기 확 밝아진다.

쨍그랑 소리에 놀란 주인이 뒤를 돌아본다. 매표소에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 즉각 노인에게 달려간다.

기자는 캑캑, 기침을 한다.

주인 씨×, 지금 뭐 하는 거야!

주인이 화염병을 빼앗고 노인을 주먹으로 후려친다.

노인과 화염병이 바닥에 나뒹군다.

주인 아이씨, 내 돈!

주인이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 자루와 돈 뭉치 따위를 문밖으로 집어던진다.

노인은 화염병 쪽으로 기어가 마저 불을 붙인다. 그리고 매표소의 문쪽 방향으로 거푸 던진다.

매표소가 큰 불길에 휩싸인다. 주인은 매표소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노인은 비틀거리며 힘겹게 일어선다. 절벽 쪽으로 걸어간다.

기자는 옆에 떨어져 있는 카메라를 집어 들어 노인을 찍는다. 불타는 매표소를 찍는다.

노인이 절벽 밑으로 떨어진다.

기자는 멍하니 차에 기대어 앉아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벨이 5번도 넘게 울렸을 때 기자는 발신인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다.

기자 야, 씨× 나 진짜 죽을 뻔했잖아!

기자가 울먹이며 수화기 건너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기자 어, 다 찍었어. 녹음도 잘됐어. 하, 이번에도 정규직 안 되는 건 아니겠지? 진짜 이번에도 안 되면 너무 빡칠 것 같아.

(사이)

기자 데리러 와. 빨리. 알았어. 내려가면 되잖아.

기자는 녹음기와 카메라를 챙기고 일어서서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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