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신춘문예] 걱정이 빛나는 밤

조선일보
  • 박은아
입력 2020.01.01 03:01

동화 당선작

"다 잘될 거야. 푹 자렴."

엄마가 불을 끄고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문 닫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렸다. 나는 침대에 누워 토깽이를 껴안았다. 부드러운 라벤더 향이 나는 토깽이를 안고 자면 잠이 잘 온다. 근데 오늘은 오래 안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다 잘될 거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믿었다. 아빠가 돌아오고, 다시 예전처럼 고기를 먹으러 가거나 여행을 가기도 할 거라고.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 잘되기는커녕 점점 나빠져만 갔다.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있는 것도 답답해졌다. 일어나 불을 켜고 토깽이를 안은 채 방 베란다로 갔다.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새벽의 찬 공기가 들어왔다. 추웠지만 답답한 것보다 나았다. 베란다 한쪽에 세워진 접이식 의자를 끌어내 앉았다. 토깽이를 꽉 껴안았다.

아침이 되면 엄마, 아빠는 정말로 이혼을 하고 나는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 집으로 간다. 내일부터는 살아본 적 없는 동네에서 살고 이름도 낯선 학교에 다닐 거다. 단짝 은지와도 멀어지겠지.

이대로 세상이 멈췄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수는 없을까.

깜깜한 밤에 혼자 떠 있는 달이 마치 나 같았다. 옛날이야기에선 달에 소원을 빌면 이뤄주던데. 요즘에도 간절히 소원을 빌면 이뤄줄까? 내일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아침이 무섭고, 걱정돼도 괜찮아."

흠칫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방엔 나밖에 없는데?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내 무릎에 앉아 있던 토깽이가 일어났다.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일어난 토깽이는 내 무릎을 밟고 뒤로 돌았다. 토깽이는 눈과 입을 움직이며 말했다. 마치 항상 말을 했던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안녕? 난 항상 너를 봐왔는데, 인사는 처음 하네."

"뭐, 뭐?"

혹시 내가 잠들었었나? 믿을 수 없는 일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거니?"

토깽이는 납작한 양 귀를 쫑긋 세웠다. 내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려 베란다 창틀로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깡충 뛰어올라가기엔 창틀이 높았다. 폴짝 세 번 뛰다 포기하곤 나를 돌아보았다.

"구경만 하지 말고 나 좀 올려줄래?"

나는 토깽이의 양손을 잡고 가볍게 들어 창틀에 올려줬다. 토깽이는 창틀에 앉았다. 토실토실한 팔로 팔짱을 끼고 오동통한 다리를 꼬느라 낑낑댔다. 풋, 웃음이 나왔다. 모습과는 안 어울리게 목소리는 진지했다.

"쯧쯧, 자기가 다 큰 줄 아는 아이들은 이렇다니까. 뭐든 믿지를 못하지. 눈에 보이는데도 말이야."

"그럼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거야?"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달이 소원을 들어준 건가? 근데 내 소원이랑 다른데? 소원을 잘못 들었나?

토깽이는 양팔을 올리고 두 귀를 하늘로 쫑긋 세웠다. 귀 끝에서 노란빛이 반짝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반딧불 같았다. 신기해서 귀를 만져보려 하자 토깽이가 움찔했다.

"잠깐만. 지금 신호를 보내는 중이거든."

노란빛이 조금씩 빛을 잃어가다 꺼졌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깜깜한 밤하늘이 갑자기 커다란 전등을 켠 듯 환해졌다. 수많은 빛이 보였다. 눈이 시려 깜박거렸다.

"저게 뭐야?"

"별들이야. 내가 별을 불러냈어."

인형이 말을 하는 거로 모자라 이제는 별을 불러낸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 펼쳐지자 오히려 말이 안 나왔다. 밤하늘은 마치 검은 종이에 금빛 반짝이를 한 줄로 뿌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빛들은 잔잔한 금빛을 뿌리며 토깽이 앞에 한 줄로 섰다. 그 금빛 줄은 멀리 하늘 끝까지 닿아 있었다.

"내가 달 토끼에게 부탁해서 별을 불렀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반짝이는 빛들을 바라봤다.

"우와, 이 별들이 소원을 이뤄주는 거니?"

토깽이는 살며시 웃었다.

"아니, 이 별들은 걱정을 담는 별이야. 걱정을 말하면 그걸 담고 하늘로 날아가."

"그럼 내 걱정들이 모두 없어지는 거야?"

토깽이는 여전히 웃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아니. 별들에게 네 걱정을 말해도 그 일이 사라지지는 않아. 네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에이, 그게 뭐야."

실망을 가득 담아 말했다. 모든 일이 다 사라지면 좋을 텐데. 부모님의 이혼도, 이사도, 잠을 설치던 밤의 기억까지 다 사라지면 좋을 텐데.

토깽이는 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토깽이에게 다가가자 금빛의 별들이 더 가깝게 보였다. 별들은 야구공만 했고 계속 바라보면 눈이 아플 정도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토깽이가 가장 앞에 있는 별 하나를 들어 나에게 건넸다. 나는 두 손으로 별을 받았다. 별은 내 손 위에 떠 있었다. 따뜻한 기운이 손에 맴돌았다.

"하지만 걱정을 담은 별들은 밤마다 너를 지켜보며 빛을 보낼 거야. 네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토깽이는 알 듯 말 듯 어려운 말을 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토깽이의 말이 별만큼이나 아주 따뜻하다는 걸.

"별 하나씩 손에 담고 걱정을 말해봐. 아주 작은 것이라도 괜찮아."

나는 토깽이 말대로 작은 걱정부터 말했다. 처음이니 조심스러웠다.

"나는…, 점점 공부가 싫어져서 걱정이야."

내 손에 있던 별이 살짝 어두워졌다. 내 걱정을 담은 만큼 빛을 못 내는 걸까. 토깽이가 내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괜찮아. 하늘에 가면 다시 환하게 빛날 거야."

걱정을 담은 별이 둥실 떠오르더니 내 머리 위를 지나쳐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 끝까지 올라간 별은 하늘 한가운데 멈췄다.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환하게 반짝였다.

줄지어 있던 다음 별이 내 손에 들어왔다.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내일부터 외할머니와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를 싫어하시진 않을까?"

내 손의 별이 아까보다 좀 더 어두워졌다. 두 번째 별도 둥실 떠올라 첫 번째 별 옆에 자리 잡았다. 세 번째 별이 손에 들어왔다.

"전학 가서도 은지 같은 친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세 번째 별도 떠올라 하늘에서 빛났다. 네 번째 별은 더 크고 환했다. 더 큰 걱정을 말해도 괜찮다는 듯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다.

"앞으로…, 아빠를 못 보면 어쩌지? 영영 아빠가 안 돌아오면 어쩌지?"

말하고 나니 마음이 왈칵 쏟아졌다. 손에 든 별 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내가…, 내가 더 노력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겼을까? 내가 공부도 잘하고, 말을 더 잘 들으면 아빠가 돌아왔을까?"

일러스트=박상훈
일러스트=박상훈
네 번째 별은 말하면 말할수록 어두워졌다. 내 어두움을 가지고 하늘로 날아갔다. 별들은 계속 손에 들어왔고 나는 걱정을 계속 말했다. 이렇게 많은 걱정을 품고 있었는지 몰랐다.

“엄마가 바빠서 이제 나 신경 안 쓰면 어떡하지?”

“엄마도 언젠가 아빠처럼 떠나버리면 어떡하지?”

내가 걱정을 말하며 별을 보내는 동안 토깽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나를 지켜봤다. 마지막 별이 다가왔다. 빛나는 따뜻한 별. 나는 별을 품에 안았다. 부드러운 온기가 가슴과 온몸에 퍼지는 기분이었다. 품에 안은 채 마지막 걱정을 말했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다양한 가족 모습이 있다고 했지만 그 가족 모두 행복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책과 드라마에서 행복한 아이는 한 손에 엄마, 다른 한 손에 아빠를 잡고 있는 아이였다. 난 이제 할 수 없다. 엄마와 아빠는 그런 걸 다 알면서도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 내 속의 말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엄마와 아빠는 떨어져 살아야 행복하니까 이혼하는 걸까? 억지로 누가 이혼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잖아. 아빠는 아빠의 행복을 위해서, 엄마는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이혼하는 거야?”

별도 토깽이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한테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거 같니?”

대답 없는 별에게 물었다. 내 품에 안긴 별은 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마지막 별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별은 내게 빛을 남긴 채 하늘로 떠올랐다. 하늘에는 나의 걱정을 담은 수십 개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여전히 창틀에 앉아 별을 보던 토깽이가 일어나 나를 보며 말했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어디로?”

“달 토끼에게 가봐야 해. 절구 찧으러 가야 하거든.”

“정말? 혹시 나 때문이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토깽이가 눈을 찡긋했다.

“난 원래 달 토끼였어. 세상 구경하러 잠깐 내려온 건데, 너랑 있는 게 행복해서 생각보다 오래 있었네. 이제 내가 없다고 다른 토끼 인형으로 갈아타면 안 돼!”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자 토깽이도 따라 웃다 말했다.

“또 걱정이 가득해서 잠이 안 오면 밤하늘을 바라봐. 네 걱정을 안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을 거야. 빛나는 달에는 나도 있고.”

나는 와락 토깽이를 안았다. 라벤더 향이 났다. 내가 씻겨준 내 토끼 인형. 토깽이는 통통한 손으로 내 등을 토닥거렸다.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았다. 토깽이가 속삭였다.

“오랫동안 날 아껴줘서 고마워. 날 아껴준 만큼 가족과 친구와 그리고 너를 아끼면서 행복하게 지내. 어렵지 않을 거야. 넌 따뜻한 아이니까.”

난 훌쩍거리며 고개를 힘차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토깽이는 별을 타고 달을 향해 떠올랐다. 점점 작아지더니 점이 되어 사라졌다. 깜깜한 하늘에는 수십 개의 별과 환한 초승달이 빛나고 있었다. 초승달 속 토깽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어두운 밤, 별이 반짝거렸다. 너무 조용해서 별들이 반짝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어쩐지 달에서 내 토깽이의 라벤더 향이 나는 것 같다.

다음 날 오후, 이사가 끝났다. 트럭이 떠난 뒤 엄마와 나는 차에 올랐다. 차를 타고 조금 가다 엄마가 말을 꺼냈다.

“토깽이 짐 쌀 때 없더라. 어딘가에 두고 왔니?”

난 주저했지만 그래도 말했다.

“토깽이 두고 온 거 아냐.”

“응? 뭐라고?”

“토깽이가 나보고 엄마를 아껴주랬어.”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다. 엄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엄마 눈이 빨갰다. 엄마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엄마가 예진이를 아껴줄게. 토깽이보다 더 잘해줄게.”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다. 신호가 바뀌어 엄마는 다시 차를 몰았다.

창밖을 보니 내가 살던 아파트가 멀리 사라져갔다. 난 그 너머 하늘을 바라봤다. 오늘 밤에도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달이 뜰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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