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가짜 장발장'

조선일보
입력 2019.12.30 03:16

프랑스혁명 때 "빵을 달라"는 시위대에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프랑스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잖아" 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다. 원래 프랑스혁명 20여년 전 루소가 쓴 고백록에 나오는 표현인데 왕비의 발언인 양 선전되면서 민중의 증오심에 불을 질렀다. 왕비에겐 비정하고 철없는 사람, 사치의 화신이란 프레임이 씌워졌고 결국 단두대로 끌려갔다.

▶인천의 한 마트에서 너무 배가 고파 식료품을 훔쳤다는 10대 소년과 30대 아버지의 스토리가 가짜 뉴스 논란에 휩싸였다. 딱하게 여겨 국밥을 사준 경찰관이 표창장을 받고, 대통령까지 사건을 언급하면서 '현대판 장발장'이란 타이틀을 쓰고 주요 뉴스로 다뤄졌다. 하지만 한 언론의 심층 취재로 소년의 아버지가 택시 기사 시절 절도 전력이 여럿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폭력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33만원 닭강정 사건'도 알고 보니 사실과 달랐다. 대출사기 범죄를 공모하다 혼자 떨어져 나간 사람에게 보복하려고 다른 공범들이 그의 이름으로 닭강정을 33만원어치나 주문했다고 한다. 

[만물상] '가짜 장발장'
▶현대판 장발장과 닭강정 사건은 공중파 TV 방송이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주요 뉴스로 다루는 바람에 일파만파로 번졌다. 이 정부 들어 친정부 매체들이 진영 논리에 갇혀 입맛에 맞는다 싶으면 과장·확대 보도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을 수호하려는 시위를 보고 한 TV 보도국장이 "딱 봐도 100만명"이라고 했을 정도다.

▶이와 정반대 상황도 있다. 청와대는 정권 비위를 비판하는 언론에 '가짜 뉴스' 프레임을 씌워 본질을 흐리는 전략을 자주 써왔다. 엊그제도 청와대 대변인실 행정관은 법원이 조국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기각 사유에 '죄질이 좋지 않다'는 표현이 없다. 언론이 소설을 막 써도 되냐"고 비난했다. 논란이 커지자 법원은 "판사가 '죄질이 좋지 않다는 표현을 썼다"고 다시 확인했다.

▶'울산 선거 공작 의혹'도 따지고 보면 현 정권 핵심들이 상대 당 후보를 모함하여 선거 구도를 바꾼 가짜 뉴스 사건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가짜 프레임 전쟁은 더 심해질 것이다. 미국의 한 팩트 체크 시민단체는 가짜 뉴스 식별법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정권 핵심부가 진짜를 가짜로 만들고, 코드를 맞추려는 방송이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나라다. 이 분야에서 이보다 영리한 정권은 다시 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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