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공원과 스타벅스의 차이

조선일보
  • 유현준 홍익대교수·건축가
입력 2019.12.20 03:13

서울은 돈 많으면 스타벅스, 적으면 빽다방
부자와 가난한 자, 한 공간 있을 가능성 낮아

뉴욕은 센트럴파크 산책, 브로드웨이 벤치…
경제적 배경 상관없이 공통의 추억 만든다

도심 속 소셜믹스는 '익명의 공간'서 이뤄져야
바둑돌 놓듯 몇 수 앞 보고 중요한 곳에 만들라

유현준 홍익대교수·건축가
유현준 홍익대교수·건축가
사람이 모여 살면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소프트웨어적 방법,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적 방법이다. 소프트웨어적 방법은 각종 세금 정책과 행정 정책들이다. 하드웨어적 방법은 공간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우리나라 계층 간 갈등의 일정 부분은 잘못 디자인된 공간 구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만나는 모든 공간은 인도나 차도 같은 이동하는 공간이다. 걸어갈 만한 거리에 공원도 없고 길거리에 벤치도 없다. 앉으려면 커피숍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서울은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커피숍이 제일 많은 도시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긴다. 돈이 많은 사람은 5000원을 내고 스타벅스에 들어가고 적은 사람은 1500원을 내고 빽다방을 간다. 이 도시에는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같은 도시에서 20년을 살아도 공통의 추억을 가질 가능성이 적다. 뉴욕 같은 경우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고, 이쪽에서 저쪽 공원으로 걸어서 평균 13분 정도면 간다. 벤치는 브로드웨이 950m 구간에 170개가 있다. 반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같은 거리에 벤치가 3개뿐이다. 멀리 있는 남산과 청계산 같은 공원은 기울어진 땅이라서 앉아서 쉴 수가 없다.

공통의 추억 만드는 도시 공간 필요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공원과 스타벅스의 차이
/일러스트=이철원
뉴욕에서는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평평한 센트럴파크에 누울 수 있고,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브라이언파크에서 토요일 여름밤에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이런 도시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공통의 추억이 만들어진다. 나는 해외에 나가면 일본인들과 쉽게 친해진다. 친일파라서 그런 게 아니다. 일본인들과는 마징가 Z, 드래곤볼, 슬램덩크 같은 할 이야기가 있어서다. 공통의 추억을 가지면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시는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주는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소셜믹스를 위해서 재건축을 할 때 같은 단지 내에 소유자 아파트 옆에 임대아파트를 넣었다. 몇 년이 지났더니 아파트 소유자들은 임대주택 주민들과 엘리베이터도 공유하기 싫어하고 자녀들을 같은 학교에 보내기도 싫어하는 현상이 생겼다. 좋은 의도의 정책이 왜 실패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선하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너무 착하게 봐서 실패했다. 소셜믹스는 '익명성'의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도시 공간 속에서 익명성의 소셜믹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장소가 공원과 벤치와 도서관이다. 그런 공간은 크기가 중요하지 않고 '분포'가 중요하다. 공원과 도서관은 어디서든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어야 한다. 공원과 도서관들을 연결하는 길에는 벤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공통의 추억이 만들어지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그런 땅을 찾을까? 재건축을 할 때 만들면 된다.

바둑과 같은 도시 재생과 재건축

문제는 재건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정책은 개발 업자와 타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층수 제한, 분양가 상한제, 각종 심의 등으로 이익은 줄고 각종 법규로 디자인 자유도 부족하다. 대부분 재건축 프로젝트는 정권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정부는 신도시를 만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도시화 비율이 91%다. 학자들은 도시화가 85%가 넘으면 완성된 것으로 본다. 전 세계에서 도시화가 90% 넘는 나라는 홍콩, 싱가포르, 한국뿐이다. 세종시를 만들면 대전에서 이사 가고, 송도를 만들면 인천에서 이사 간다. 구도심은 슬럼화된다. 버려진 구도심의 인프라는 천문학적 재산 손실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새로운 도시 재정비 촉진 법안이 필요하다.

도시 재생과 재건축은 바둑과 같다. 바둑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어디에 돌을 두느냐가 승부를 결정한다. 지금의 정책은 상대편인 개발업자에게 돌을 안 두게 만드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가르치려고만 하면 대화나 게임 자체가 시작이 안 된다. 흑돌을 쥔 개발업자가 돌을 두는 것을 두려워 말라. 내가 쥔 백돌을 어디에 먼저 두느냐가 중요하다. 바둑의 고수는 중요한 적재적소에 정확한 순서대로 돌을 둔다. 그게 승리의 원칙이다. 개발업자가 이익을 위해서 펜트하우스를 300억에 중국 부자에게 팔게 하라. 대신 우리는 1층에 300평짜리 포켓파크를 가지면 된다. 펜트하우스를 10채 팔고 그 돈으로 3000평짜리 도서관을 1층에 만들면 된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하면 부동산 가격 책정 방식이나 건축 법규를 바꿀 필요도 있다. 가장 좋은 시스템은 이기심을 이용해 좋은 세상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1층 중요 포인트에 공원과 도서관과 벤치를 만들라. 그곳이 우리가 백돌을 둬야 하는 위치다. 똑똑하게 줄 건 주고 얻을 것은 얻어라. 그래야 10년 후에 이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화목해질 수 있는 도시공간 구조를 가지게 될 것이다. 바둑돌을 놓듯이 도심 속 중요한 곳에 공원, 도서관, 벤치를 두라. 그게 우리가 이 시대에 만들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화목하게 하는' 도시다. 이것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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