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의 내로남불 "大國이 왜 小國 괴롭히나"

조선일보
입력 2019.12.05 03:47

강경화 만나 美일방주의 비판
정작 본인은 사드보복 언급 않고 美중거리 미사일 한국 배치 반대

회담 예정보다 1시간 이상 길어져
강경화 외교는 사드보복 철회 등 정식으로 요구 안해 저자세 논란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4일 방한해 "세계 안정과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은 일방주의가 국제 질서를 파괴하고, 패권 행위로 국제 관계 준칙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찾아 첫 일성으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에서 강경화 외교장관과 가진 양자 회담에서 "중국은 시종 일관되게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평화 외교 정책을 수행해 왔으며, 대국이건 소국이건 모두 평등함을 주장하고 국제 관계의 민주화를 주장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중국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에 반대하고, 자신의 힘만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에 반대하며,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물론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는 것도 반대한다"고 했다.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강경화(오른쪽) 외교부 장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하지만 그는 이날 회담 모두 발언에서 2016년부터 중국이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전방위적 보복 조치를 가하는 상황은 언급하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한국에 사드 보복 '봉합' 조건으로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등 굴욕적인 '3불(不) 서약'을 억지로 쓰게 한 중국이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에 반대한다'고 남 일처럼 말한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에 따르면, 강 장관과 왕 부장의 회담은 이날 오후 4시 15분에 시작돼 오후 6시 30분에 끝났다. 예상보다 1시간여 늦게 끝난 것이다. 당초 외교부는 회담을 5시 15분쯤 끝내고,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으로 이동해 오후 6시 30분쯤 왕 부장과 만찬 행사를 가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회담이 길어지면서 만찬도 뒤로 밀려 열렸다. 외교부는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기자 간담회도 이날 오후 5시 30분쯤 열려고 했으나, 결국 취소했다. 양측 간 사드, 북핵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면서 정해 놓은 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왕 부장은 이날 회담을 마치고 외교부 청사를 빠져나가며 회담이 길어진 데 대해 "협력 강화를 위해 논의할 사안이 많았고, 합의도 많이 이뤘다"고 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양측이 여러 가지 사안을 차분히 논의하다 보니 (회담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회담에서 불편한 얘기를 여럿 꺼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은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아직 중거리 미사일 배치와 관련해 한국 측과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 왕 부장은 성주에 임시 배치된 사드와 관련해서도 '정식 배치'는 안 된다는 취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왕 부장은 그간 미사일 배치 반대 등 중국 정부가 공개 표명한 이슈에 대해 강 장관에게도 재차 강조했다"면서 "그가 말한 '협력 강화를 위한 논의 사안'이란 것도 한·미 간 안보 협력 사항과 충돌되는 것들"이라고 했다.

강 장관은 이날 왕 부장에게 '한한령 등 사드 보복의 완전한 철회'를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은 "양국 관계가 발전해나가야 한다"면서 한한령 해제 요청을 우회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중국은 미사일 배치 반대 등으로 한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하는데, 한국은 중국의 부당한 보복 조치에 대해 제대로 항의 못 하고 저자세로 요청하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가 2017년 10월 '3불' 약속에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국이 한한령을 풀지 않은 점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왕 부장의 방한은 양날의 검과 같다"면서 "왕 부장에 이어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 이어지며 한한령이 풀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통상·안보 압박이 앞으로 보다 노골적이고 강압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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