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은 '쩐의 전쟁'… 경선 주자 18명 "자금 부족" 포기

조선일보
입력 2019.12.05 03:02

해리스·오로크·질리브랜드 등 중위권 주자들도 잇달아 하차
지지율 1위 바이든, 모금액 바닥… 내년 2~3월쯤 자금난 빠질 수도

트럼프는 1시간에 300만弗 모아

해리스
해리스
#장면1. 미국 민주당의 지지율 5위 대선 주자 카멀라 해리스(여·55) 상원의원이 3일(현지 시각)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선거 모금액이 바닥났다. 난 억만장자가 아니어서 캠페인을 자력으로 끌고 갈 수 없다"란 이유다.

#장면 2. 도널드 트럼프(73) 미 대통령은 3일 나토 정상회의 일정 중 1시간 짬을 내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미 기업인·부유층을 상대로 재선 모금 행사를 열었다. 이날 반짝 행사로 모은 자금만 300만달러(약 36억원)였다.

같은 날 벌어진 두 장면은 돈이 좌우하는 미국 대선판의 단면을 보여준다.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이자 선거의 나라인 미국은 갈수록 자금력이 곧 선거 당락으로 직결되고 있다. 미국은 영토가 넓고 유권자 구성이 다양해 값비싼 TV 광고나 온라인 타깃 광고 의존율이 높고, 선거 사이클이 길어 기본적으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간다. 또 각종 정치 광고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로 인정돼 기업과 이익 단체들이 외곽 조직(수퍼팩)을 통해 후원을 무제한 쏟아붓기 때문에 대선 판돈이 매번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올 초 30여명이 출사표를 낸 민주당 경선에선 지금까지 총 18명이 중도 포기를 선언했다. 단순히 군소 주자들이 지지율 가망이 없어 물러나는 게 아니다. 지난가을부터 베토 오로크(47) 전 하원의원, 키어스틴 질리브랜드(여·52) 상원의원 등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중위권 주자들이 적자(赤字)를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다. 반면 자금력이 탄탄한 벤처사업가 앤드루 양(44)이나 헤지펀드 매니저 톰 스타이어(62) 같은 이는 지지율이 미미해도 동요가 없다. 두 기업인 출신 주자는 이달 TV 토론에도 유력 주자들과 나란히 참가할 예정으로, "대선 토론 무대는 돈으로 사는 게 확실하다"(CNN)란 말이 나온다.

2020 美 대선 주자들의 가용 선거 자금
놀라운 것은 지지율 1위인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이 해리스의 전철을 밟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연방선거위원회가 지난 10월 발표한 2019년 3분기 캠프별 모금 현황에 따르면, 바이든 캠프의 모금 속도가 크게 떨어져 수중에 900만달러(약 107억원)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유력 주자는 물론 해리스 의원에게도 밀리는 액수였다. 언론들은 "이 추세면 내년 경선이 시작되는 2~3월쯤 자금이 바닥나 사퇴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놨다. 마이클 블룸버그(77) 전 뉴욕시장, 힐러리 클린턴(72) 전 국무장관 등 돈 걱정 없는 노장들이 잇따라 경선판을 타진한 건 '바이든 자금력'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진보 진영 내 큰손의 돈은 지지율 4위의 피트 부티지지(37)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에게 몰리고 있다. 부티지지는 자금력이 지지율을 견인한 좋은 예다. 그는 최근까지 해리스 의원과 지지율 4~5위를 다퉜는데, 모금력만큼은 톱 수준이었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초기 경선주와 일부 전국 조사에서 1~2위를 휩쓸기 시작했다. 중산층 유권자와 실리콘밸리·월스트리트 큰손들이 '하버드대 졸업, 맥킨지 컨설턴트'란 화려한 스펙을 가진 중도 주자에게 투자한 것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자녀가 없어 가처분 소득이 높은 동성애자 유권자들도 부티지지 자금력의 원천이다.

급진 좌파인 버니 샌더스(78)와 엘리자베스 워런(70) 상원의원은 지지율이 2~3위에 정체돼 있지만 모금액은 1위를 다툰다. 이들의 캠프에는 200달러 이하의 '풀뿌리 후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아르바이트를 해 20~30달러씩 보내는 젊은이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반(反)자본주의를 내건 샌더스와 워런의 지지나 자금 모금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야당 주자들을 압도한다. 캠프별 3분기 자금 현황에서 트럼프는 민주당 1~3위 주자를 합친 만큼인 8320만달러(약 993억원)를 기록했다. 올 한 해 트럼프 캠프와 공화당이 모금한 총액수는 3억달러(약 3600억원)로, 이 중 절반을 아직 현금으로 쥐고 있다. 역대 대통령의 재선 모금액으론 최고 액수다. 야당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하더라도 트럼프의 자금력과 큰 격차가 나 "민주당이 떨고 있다"(폴리티코)고 한다.

트럼프는 모금 방식도 매우 공격적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의 모금 행사 연설의 단골 메뉴는 불법 이민자와 진보 공격, 그리고 동맹의 방위비, 무역 전쟁이다. 자신의 위력을 과장하면서 '돈 문제'를 자극적으로 선동하는 건 '나한테 투자하면 더 큰 수익으로 돌려주겠다'는 메시지란 분석이다. 트럼프가 지난 8월 "한국에 방위비 10억달러를 받아내는 게 브루클린 임대 아파트 월세 114.13달러를 받는 것보다 쉬웠다"고 말한 뉴욕의 모금 행사에선 2시간 만에 1200만달러(약 143억원)가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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