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간 매일 재판부에 '금주 인증샷'… 음주 뺑소니범 2심서 감형

조선일보
입력 2019.12.05 03:00

'치유법원 프로그램' 첫 대상자

술 대신 가족과 함께한 동영상 법정서 틀자 곳곳서 박수 나와
법원, 징역형에서 집유로 줄여줘

"3개월 전 죄수복 입고 그 자리에 서 있던 때를 기억해보세요. 지금 피고인은 변화했습니까?"

4일 음주 뺑소니 혐의로 기소된 허모(34)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허씨에게 이렇게 묻고는 선고를 시작했다.

석달간 매일 재판부에 '금주 인증샷'… 음주 뺑소니범 2심서 감형
음주 운전 전과가 있던 그는 지난 1월 또 음주 운전 사고를 내고 달아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지난 8월 항소심 재판부는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그가 구속돼 있을 경우 가족의 생계가 어려운 점, 사고 내용이 경미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들어 그를 '치유법원 프로그램'의 첫 시범 대상자로 정했다. 법원이 범죄의 원인이 된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일정 기간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그 결과를 양형(量刑)에 반영하는 제도다.

재판부는 허씨를 보석하면서 보석금 대신 다른 조건을 달았다. 석 달간 금주하고 밤 10시 이전에 귀가해 가족과 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매일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확인하려고 판사와 검사들이 볼 수 있는 포털사이트 비공개 카페도 만들었다.

허씨는 보석된 지난 8월 28일부터 선고 전날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석 달 넘게 '재판부의 숙제'를 이행했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책을 읽어주거나, 아내와 함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 등 일상 동영상이었다. 판사와 검사, 변호인 등은 틈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허씨가 올린 동영상을 보고 격려 댓글을 달았다.

지난달 결심(結審) 공판에서는 법정에서 이 동영상이 재생됐다. 당시 재판부는 "(과제를 잘 수행한) 피고인에게 박수를 보냈으면 한다"고 했고, 이를 함께 본 검사와 변호인, 일부 방청객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부여된 과제는 술에 대한 절제력을 키우고 가정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며 "재판부에 대한 약속이었지만 사실 자신의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약속이자 자랑스러운 아버지, 믿음직한 남편이 되기 위한 약속이었고 결국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이어 "치유법원 프로그램의 첫 졸업자로서 우리 사회에 밝고 따뜻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바란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으로 감형했다. 허씨는 선고 직후 "처음부터 하면 안 되는 음주 운전을 해서 이 자리에 왔는데 칭찬을 들어 부끄럽다"며 "치유법원 프로그램이 끝났어도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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