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이 돌기둥은 뭐예요?

조선일보
  •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입력 2019.12.05 03:10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임경희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관
황당했던 경험이 때로는 삶의 지침이 되기도 한다. 대학 새내기 때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내 생애에서 오롯이 혼자 떠난 첫 여행이었다. 춘천에 도착해 정해진 목적지 없이 마냥 걸었다.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감정에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또렷이 난다.

걷다 보니 어느새 시골 풍경이 펼쳐졌고, 돌기둥 두 개가 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기둥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왜 여기에 세워져 있는지, 생김새며 돌구멍이며 여간 궁금한 게 아니었다. 설명 안내판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니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침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가시길래 다짜고짜 여쭤봤다. "할아버지, 이 돌기둥은 뭐예요?" "어, 옛날에 거기 구멍에 사람 머리 넣고 처형할 때 쓰던 거라고 하데." 마침 더 연세 드신 할머니가 지나가다 말을 거드신다. "사변(6·25전쟁) 때 거기서 사람도 많이 죽었다고 하데." 두 분은 서로 대화를 나누며 가던 길을 가셨다. 나는 그때 돌기둥이 무서워 보였고, 곧바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춘천닭갈비를 찾아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에서 부석사로 답사를 갔는데, 춘천에서 본 돌기둥을 또 볼 수 있었다. 설명을 듣고서야 돌기둥은 사찰 영역이 시작되는 곳에 깃발을 걸어두던 당간지주(幢竿支柱)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황당해서 주변 친구와 선배들에게 춘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결과는 답사 내내 놀림으로 되돌려 받았다. 새내기가 모를 수도 있지, 그걸 그리 놀려댄 선배들이 얄밉기도 했다.

[일사일언] 이 돌기둥은 뭐예요?
당간지주에 대한 경험은 이후 내게 큰 지침이 됐다. 문화재 보호와 안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재 주변 주민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분들이 참여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 속에서 문화재를 아끼고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알린다면, 문화유산이 더욱 풍부하게 살아 숨 쉴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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