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꿈과 꿈이 돌고 도는 구멍"… 젊은 시인들이 짓는 '詩語 사전'

조선일보
입력 2019.12.05 03:00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등단 시인들이 만든 '시작 사전'… 시어 하나씩 골라 재밌게 뜻풀이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는 건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일"

골목·별·일몰·체육복·원수·벽난로·공·미래·부고·손톱….

올 한 해 시인들이 새롭게 정의한 낱말들이다. 출판사 창비의 문예지 '문학3'에선 지난 1년 동안 특별한 사전을 만들었다. 등단하고 아직 첫 시집을 내지 않은 26명의 시인이 만드는 '시작(詩作)하는 사전'. 자신의 시 2편을 문학3 웹사이트에 발표하고 시 속의 단어 하나를 골라 시적인 사유를 담은 뜻풀이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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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하는 사전' 낭독회에 모인 시인들이 2019년을 한 단어로 정의해보고 있다. 이제 막 등단한 시인들에게 2019년은 '혼란'이고 '외출'이었다. 왼쪽부터 홍지호·조온윤·정재율·정다연·안희연 시인. /김지호 기자
말의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시인의 사전에서 '골목'은 '사람과 사람이, 꿈과 꿈이 돌고 도는 구멍'(주민현)이었고, '별'은 '밤에 하늘을 보는 사람이 찾으려고 하는 것'(성다영)이었다. 한 줄짜리 시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국희 시인은 '일몰'을 이렇게 풀이했다. '쓰이지 않은 색채를 누군가 자루에 담는다'.

지난달 28일에는 사전 속 단어들과 시를 모아 낭독회도 열었다. 30여명의 독자가 모여 시어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홍지호 시인은 "단어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은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일"이라면서 "또 하나의 시를 쓴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했다.

정재율 시인은 단어 '지구본'을 골라 "멈추면 도착하는 만나본 적 없는 이름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비싸고 예쁜 지구본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조그만 지구본을 사 책상 위에 두었다"면서 "빙그르르 돌아야 할 것 같은데 멈춰 있는 시간이 많은 지구본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라고 했다.

조온윤 시인은 단어 '그림자'를 골랐다. 그가 다시 쓴 뜻풀이는 이렇다. "시끄럽고 환한 곳에 가면 내 등 뒤로 숨는 것들. 빛을 등지고 돌아올 때에야 마주 볼 수 있다." 그는 그림자를 고른 이유에 대해 "환한 곳을 피하는 그림자의 성질과 제 천성이 닮아 있어서 더 얘기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시 '그림자 숲'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무가 아닌/나무의 그림자가 우거져 있었다/우는 건 새가 아닌 새의 마음이었다"

시인이 꼽은 단어들을 보고 독자들도 각자만의 뜻풀이를 포스트잇에 써냈다. 누군가는 그림자를 "모두가 어두우면 드러낼 수 없는 것"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구본을 "타인의 고통"이라고 썼다.

이날 참석한 4명의 시인은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단어를 하나씩 꼽았다. 정다연 시인은 '따뜻함', 조온윤 시인은 '온(溫)', 정재율 시인은 '손', 홍지호 시인은 '나'를 골랐다. 정재율 시인은 "'손'은 따뜻하든 차갑든 잡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않나"라면서 "누군가도 내 시 앞으로 와서 힘듦을 나누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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