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핵화 쇼' 막 내린 뒤를 대비해야 할 때

조선일보
입력 2019.12.05 03:19

트럼프 미 대통령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기를 희망하지만 (북한에 대해) 필요하다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미·북 간 긴장이 극에 달했던 2017년 김정은을 지칭했던 '로켓맨'이라는 표현도 다시 썼다. 트럼프는 13차례에 걸친 북의 방사포·미사일 도발에도 "별거 아니다"며 김정은을 두둔해왔다. 그러던 그가 북한이 더 큰 도발을 예고하기 시작하자 다시 '군사 옵션'을 언급한 것이다. "김정은과 좋은 관계에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언제든 '화염과 분노'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경고다.

김정은은 백두산에서 다시 '백마 쇼'를 벌였다. 김정은은 '장성택 처형' 등 무슨 결단을 앞두고 백두산에 오르곤 했는데, 두 달 전 백두산 등반 직후에는 "금강산의 너절한 남측 시설을 걷어내라"며 사실상 남북 경협 중단을 선언했다. 이번에는 "봉쇄 압박 책동에 맞선 자력갱생 불굴의 정신력"을 강조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도 소집했다. 새 강경 노선을 밝힐 가능성이 높다. ICBM을 발사할 수 있는 콘크리트 토대를 증설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미·북 양쪽에서 나오는 신호들은 지난 2년간 끌어왔던 가짜 '비핵화 쇼'가 막바지에 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김정은 비핵화 의지'가 정체를 드러낸 이상 비핵화 쇼는 곧 파탄날 수 있다. '연말 시한'을 내걸었던 김정은은 본격 도발을 시작하고 트럼프는 경제, 군사적 제재에 나설 것이다. 북이 ICBM 발사 등으로 트럼프 재선 가도에 상처를 낸다면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할지 예단하기 힘들다.

그런 한편으로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트럼프도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만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외교 치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이벤트다. 트럼프가 김정은의 비핵화 시늉을 받아주면서 제재를 완화하고 '치적'이라고 자랑하고 나설 가능성은 항상 있다. 북의 핵보유가 사실상 허용되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전개될지 쉽게 예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느 길로 가든 북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 사실을 부정하면 다른 의도를 가진 것이다. 차라리 빨리 쇼가 끝나고 그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외교적, 군사적으로 대비하고 준비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한·미 양국 정부다. 트럼프의 머릿속에 한국 안보는 없으며 본인의 정치적 이해관계뿐이다. 트럼프는 방위비를 더 받아내기 위해 "(주한미군 주둔·철수) 어느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고도 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정부도 김정은 쇼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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