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주 52시간제, 근로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라

조선일보
  •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입력 2019.12.04 03:17

50~299인 이하 사업장서 주 52시간제 시행되면 월급 12.5% 정도 감소
많지 않은 월급 벌충하려면 더 많은 시간 일해야 돼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병원 前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는 그간 이미 취직한 사람들, 특히 가장 좋은 일자리와 노조를 가진 근로자 10여%가 원하는 것들을 해 주느라고 아직 취직 못 한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는 볼 만한 성과를 올리지 못해 왔다. 과로 사회를 청산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주겠다고 하는 주 52시간 근로제는 이 정부가 처음으로 미취업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니 가상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내년 1월 1일로 예정된 50~299인 사업장에 대해서 확대 시행을 하면서 당분간 처벌은 유예하기로 한 것은 앞으로 법 개정을 포함한 상당 폭의 수정이 필요함을 시인한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의하면 조사 사업장의 45%에서, 근로자의 40%가, 주당 평균 59시간 일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두 사람을 59시간씩 118시간 일을 시키면 각각 40시간에 대해 80, 초과근무 38시간에 대해 57, 계 137의 임금이 드는데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세 사람을 각각 40시간씩 120시간 고용해도 120만 주면 충분하다. 초과근무는 기업이 시키고 싶어서 시키는 것이 아니다.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주당 근로시간을 당장 40시간으로 제한해도 좋다.

'과로 사회'를 초래한 원인은 따로 있다. 일단 고용을 하면 사업이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시킬 일이 없게 되어도 해고는커녕 임금 조정도 사실상 불가능한 우리 노동법의 경직성 때문에, 초과근무수당 50%를 더 주고라도 기존 직원에게 장시간 일을 시키는 게 낫다는 사정이 바뀌지 않는 한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나누기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근로자들도 같은 일을 하고 50% 높은 임금을 받으니 싫지 않다.

문제는 여야정 모두가 기업의 애로 해결을 위해서 법 개정까지 논의하고 있으면서도 근로자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에는 관심도 없다는 점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연구에 의하면 주 52시간 근무제가 그대로 시행되면 중소기업 근로자 월 소득이 33만~39만원, 비율로는 12.5% 정도 감소할 것이라고 한다. (평균이기 때문에 이보다 소득 감소 폭이 더 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많지도 않은 월급(261만~318만원)에서 이 정도의 소득 감소를 견딜 수가 있을까? 많은 사람이 줄어든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퇴근 후 다른 일을 찾아 나서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다른 일터까지 가고 오는 데 시간이 소모되고, 다른 일자리에서는 초과근무가 아니라서 50% 할증을 못 받기 때문에 잃어버린 소득을 벌충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여야정이 논의하는 탄력근로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특별연장근로 허용 사유 확대 등은 모두 기업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이번 법 개정 과정에서 '근로자가 원하는 경우' 훨씬 더 탄력적인 이행 기간을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해 주면 어떨까?

기업은 해마다 임금 인상을 한다. 그런데 그 인상분의 일부를 근로시간 단축에 쓰고 나머지를 임금 인상에 쓰면 적어도 줄어든 월급을 집에 가져가야 하는 참상은 면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주 52시간에 이르기까지 기간이 더 걸리는 문제도 있을 수 있고, 초과근무를 많이 하고 있는 기업에는 더 긴 이행 기간을 허용하자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초과근무를 많이 하게 된 것은 제도 탓이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지금까지 수십 년 세계 최장 수준 근로시간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는데 몇 년 천천히 가면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아무리 길어도 10년 안에는 다 해소해야 한다는 제한을 가한다거나, 진정 근로자들이 원하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두어도 좋을 것이다.

2018년 7월 종업원 3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시작해 종업원 5~49인 사업장에 적용되는 것은 2021년 7월인데, 영세 기업에는 더 긴 계도 기간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완성에 5년 이상 걸리게 된다. 처음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적용 시기를 미뤄 주는 구태의연한 방식이 아니라 근로자의 임금 감소 정도에 따라 이행 기간을 달리하는 융통성을 발휘하였더라도 비슷한 기간 안에 완성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근로시간 감소가 그대로 소득 감소로 이어져 고통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시간도, 대변해 줄 노조도 없는 사람들이다. 양대 노총은 정부의 개선안이 기업 편을 든다고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비록 조합원은 아니지만 근로자에게 도움이 될 대안을 한번 내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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