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취중잡담] 33살 퇴직금 2000만원으로…대학포기 남성의 60억 기적

입력 2019.12.04 06:00

폴리텍 나와 퇴직금 2000만원으로 기술기업 창업
141번째 기능한국인 선정
20년치 인생계획표 세우고 실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CEO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솔직한 속내를 들을 수 있게 취중진담 형식으로 인터뷰했습니다.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 미래를 함께 탐색해 보시죠.

대학이 인생의 목표일 필요 없다. 일찍 기술인을 선택해 최연소 기능장이 되고 LG전자와 거래하는 부품 기업 창업에도 성공한 어재동 ‘에스앤디이엔지’ 대표를 만났다. 폴리텍 출신으로 20살 때 처음 만든 20년짜리 인생계획표가 성공 비결이다.

◇LG전자 A9 청소기 부품 공급

에스앤디이엔지는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 소재로 된, 주로 가전제품의 내외장재와 정밀가공 부품을 생산한다. 도면대로 금형을 설계해서 여기에 액체 금속을 주입해 원하는 모양을 뽑아낸 뒤, 정밀 가공을 거쳐 각종 부품을 만들어낸다.


▲어재동 대표(왼쪽)와 A9 청소기 알루미늄 필터 / 에스앤디앤지 제공

LG전자 프리미엄 무선청소기 A9에 장착된 알루미늄 소재 필터가 이 회사 제품이다. LG 시그니처TV에 달린 스피커 외장재, 정수기의 외장재 패널, 아이리버 MP3플레이너 외장재 등도 이 회사에서 만든다. 주로 프리미엄급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금속으로 가공하는 내외장재 부품은 대부분 만들 수 있습니다."

매출 다변화를 위해 최종 소비재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100년 기업이 되려면 자기 제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량용 스마트폰 거치대, 알루미늄 케이스 방향제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제품 단계인데요. 내년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A9 청소기 알루미늄 필터 / 에스앤디앤지 제공
A9 청소기 알루미늄 필터 / 에스앤디앤지 제공
◇대학 포기하고 폴리텍 통한 기술자 선택

어려서 엔지니어가 꿈이었다. 새총, 나무칼 같은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놀았다. 인문계고 졸업 후 대학 대신 빠른 기술자의 길을 택했다. 교육 1년, 현장 1년으로 구성된 폴리텍대 2년 과정에 금형 전공으로 입학했다. "원래는 대학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기술 배우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마침 사촌형이 전문대 나와 폴리텍 가는 걸 봤습니다. 기업 경력을 토대로 기술사 시험도 붙더군요. 기술 배우면서 빠르게 현장 경험을 할 수 있는 폴리텍이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2년간 공부하면서 자격증을 3개 취득하고 알루미늄 소재를 생산하는 회사에 들어갔다. "1년간 열심히 일하고 나서, 회사에 야간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근무태도가 좋았는지 허락해 주더군요."

주경야독의 목표는 기능장 자격증 취득이었다. 산업기사를 갖고 있는 사람이 4년 이상 기업 경력이 있으면 도전할 수 있다. "열심히 도전해서 만 24살, 당시로선 최연소에 기능장 자격증을 땄습니다."

동시에 병역을 해결했다. "회사 다니면서 기술 병역특례 자격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돈 벌면서, 야간대에서 학위를 따고, 자격증 공부하면서, 병역도 해결하고. 첫직장에서 4가지 일을 한 번에 한 셈입니다."


기능장 취득을 위해 공부하던 시절의 어재동 대표 / 에스앤디이엔지 제공
기능장 취득을 위해 공부하던 시절의 어재동 대표 / 에스앤디이엔지 제공
회사를 두 번 옮기며 총 13년 기술자로 일했다. 주로 연구개발을 맡았다. "기술자이자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33살 되던 해, 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표를 내고 퇴직금 2000만원으로 정밀가공 부품업체를 창업했다. 그럴듯한 납품처가 없어 초반은 맨땅 헤딩이었다. "어렵사리 고객을 찾아, 오더 주는 일이면 뭐든지 했습니다. 가능성 검토, 도면 제작, 설계, 소재 개발 등. 닥치는대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일감이 늘더군요."

LG전자와 거래는 9년 전 시작했다. 처음 작은 일을 맡기다가 부품 개발 등으로 확대됐고 4년 전부터 TV, 청소기 부품 등 대량 납품을 하고 있다. 회사 매출은 작년 60억원을 기록했다.


직원들과 일하는 어재동 대표 / 에스앤디이엔지 제공
직원들과 일하는 어재동 대표 / 에스앤디이엔지 제공
◇대한민국명장에 도전

창업 3년차에 기업부설 연구소를 열었다. "길게 보기로 했습니다.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계속 실력을 쌓아둬야 하니까요. 매출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어떤 연구를 하나요.
"가공 정밀도를 높이는 연구를 하고요. 다양한 노하우를 쌓으면서, 고객들이 만들어 달라고 도면을 보내오면, ‘이렇게 수정해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역제안도 합니다. 고객사들이 좋아하십니다. ‘심미디자인 표면가공 시스템’ 같은 특허도 여럿 취득했습니다."

기능 자격증은 기능사, 산업기사, 기능장 순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기술 자격증은 산업기사, 기사, 기술사 순으로 등급이 올라간다. 어 대표는 기능사 2개, 산업기사 1개, 기능장 1개, 기술사 1개를 갖고 있다. 또 직업 교사 자격증 1개, 기술지도사 1개, 우수숙련기술자 1개를 갖고 있다.


표창을 받은 어재동 대표 / 에스앤디이엔지 제공
표창을 받은 어재동 대표 / 에스앤디이엔지 제공
얼마전 대한민국 기능한국인 141호로 선정됐다. 인간문화재처럼 정부가 기술인을 선정해 인증하는 제도인데, 정밀가공 분야 기술을 인정받아 141번째 기능한국인이 됐다. 마지막 남은 게 자격의 최고봉인 ‘대한민국명장’이다. 기능장 중에서 우수숙련기술자를 취득한 사람이 도전할 수 있다. "곧 좋은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학위는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한 논문 제출 단계에 있다.

다른 임직원에도 공부를 권한다. "들어올 때는 대부분 고교나 전문대졸 학력이었는데, 임원들은 모두 석사를 갖고 있습니다. 밤에 무조건 공부하도록 했거든요. 다른 직원도 모두 공부 중입니다. 그랬더니 이직도 거의 없습니다. 공부하느라 다른 생각 못하거든요."

-중소기업이 직원 교육에 신경쓰기 쉽지 않을텐데요.
"일은 사람이 합니다. 공정 개선도 사람이 합니다. 사람이 재산이죠. 중소기업도 경영자만 뜻이 있으면 얼마든지 대기업처럼 직원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에스앤디이엔지 제품 생산 모습 / 에스앤디이엔지 제공

◇삶의 원동력이 된 20년 계획표

-앞으로 경영 환경은 어떻게 전망하세요.
"다들 어려워질거라고 얘기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미리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실천할 수 있는 치밀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한편에선 부품소재 국산화한다고 정부가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건 기회 요소인데요. 잘 활용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비결이 뭔가요.
"평생 목표를 세우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인생계획표가 있습니다. 20살 때 처음 짰는데요. 앞으로 20년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수시로 꺼내보고 다듬죠. 그렇게 항상 끼고 다니야 진정한 인생계획표가 됩니다. 일 관련된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몇 살 결혼해서, 몇 살 터울로 몇 명 애들 낳겠다. 몇 살에 무슨 차를 타고 집은 몇 평 짜리를 사겠다. 인생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이 있습니다. 살아가는 데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됩니다. 계획들을 모두 이루려면 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실행해야 하거든요. 지난 계획표를 꺼내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많이 맞았습니다. 한 90% 정도? 계획표에는 교수를 해야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는데요. 2년 전 한국산업기술대 겸임교수로 임용돼 대학원에서 전공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은 최고 인생계획이 뭔가요.
"올해로 25년 째 기술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후배들에게 보다 많이 알려주고 싶습니다. 사람들에게 ‘엔지니어하니 좋은 인생이 있네’ 보여주고 싶습니다. 많은 똑똑한 후배들이 엔지니어를 지망하면서 국가도 계속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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