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현대차, '80년대생 임원' 승진 방정식 바뀌었다

입력 2019.12.01 09:00

컨설팅회사 출신→마케팅·디자인·신기술 전문가로
내부 출신 전략기획 전문가 발탁 사례도 속속
사업 변화 속도 빨라 지자 젊은 리더 필요성 늘어

LG, SK, 현대차, 삼성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1980년대생을 임원으로 발탁하기 시작하면서 ‘30대 임원’이 승진 방정식이 바뀌고 있다. 핵심은 현업에서 ‘제품을 잘 팔고, 잘 만들 줄 아는’ 인재들을 발굴한 뒤, 사업부 단위의 조직을 맡기는 방식이다. 외부에서 전략기획 전문가를 데리고 오기보다 내부에서 역량이 검증된 사람을 승진시키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또 임원 승진 연령도 3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으로 낮아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발표한 LG그룹 인사에는 이를 새로 임원(상무)로 발탁된 30대 여성 두 사람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먼저 심미진 LG생활건강 상무는 1985년생으로 34세 나이에 임원을 달았다. 지금까지 30대 임원들은 대부분 38~39세 정도의 연령대에서 배출되었었다. 임원 승진에 필요한 경력을 쌓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뿐더러,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한국 기업 문화 성격에 30대 초반 임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 심 상무는 컨설팅회사, 투자은행(IB) 등에서 영입된 사람도 아니다. 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2007년에 입사해 줄곧 마케팅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중간에 미국 UC버클리 경영대학원(MBA)에 유학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회사 내에서 성장해온 셈이다. 심 상무는 지난 2018년 샤워용 물비누인 ‘바디워시’ 제품 마케팅을 맡은 뒤 2위 업체와 엇비슷하던 점유율을 최근 10.9%까지 벌리는 성과를 냈다. 3분기 관련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 늘었다.

올해 39세인 김수연 LG전자 수석전문위원(상무급)은 디자이너 출신이다. 김 수석전문위원 LG전자가 최고급 붙박이(빌트인) 가전제품 ‘시그너처’ 개발을 시작한 2013년부터 지금까지 디자인 총괄 역할을 해왔다. 2003년 입사 이후 줄곧 주방 가진 디자인 ‘한 우물’을 파왔고, 북미 지역 특화 제품 디자인 경험이 많다. 디자인 분야의 전문성과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다. LG전자 가전제품 사업부문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2.5%로 미국 월풀(4.6%)보다 8.0%포인트가량 높다. 상반기에는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도 월풀을 제치고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시그너처 등 프리미엄 제품의 성공은 매출뿐만 아니라 LG전자의 브랜드 가치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28일 인사에서 새로 상무로 승진한 심미진 LG생활건강 퍼스널케어 부문장, 임이한 LG생활건강 오휘마케팅 부문장, 김수연 LG전자 태스크리더(왼쪽부터). 세 사람은 모두 30대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LG 제공
28일 인사에서 새로 상무로 승진한 심미진 LG생활건강 퍼스널케어 부문장, 임이한 LG생활건강 오휘마케팅 부문장, 김수연 LG전자 태스크리더(왼쪽부터). 세 사람은 모두 30대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LG 제공
결국 LG의 올해 30대 임원 인사는 ‘제품을 잘 팔고, 잘 만들 줄 아는’ 직원을 조기에 임원으로 승진시켜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맡기겠다는 의미다. 기업 전략이나 M&A(인수합병) 등의 후선(後線) 부서의 참모보다 실제 사업 일선에서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을 발굴해 조기에 승진시키겠다는 얘기다. LG그룹은 이번 인사에 대해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는 어려운 경영 환경을 돌파해"나가기 위해 "성과와 역량에 기반한 임원 인사"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LG와 같이 현업에서 검증 받은 젊은 중간 관리자를 빠르게 임원으로 올리는 일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데다, 전통적인 업종 간 경계도 무너지면서 이전보다 젊은 사람들이 사업부 리더를 맡아야 할 필요성이 늘어나고 있다"며 "그 동안 역량이 검증된 30대를 빠르게 임원으로 올리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 같다면 40대 중후반~50대가 경험이 많고 조직 관리 역량이 뛰어날 수 밖에 없었는데, 지금과 같이 변화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는 중장년 위주 임원 구성이 오히려 독(毒)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대기업에서 30대 임원들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대개 경영컨설팅 회사 출신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사업 진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인수합병(M&A) 등에서 노하우가 풍부한 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컨설팅회사에서 8~10년 정도 일한 이들을 스카우트해왔던 것이었다. 본격적인 내부 승진은 2010년경부터는 삼성전자 등 기술 경쟁력이 중요한 기업에서 이뤄졌다. 2010년 삼성전자는 처음으로 30대 상무 세 명을 배출한다. 당시 삼성전자 TV 디자인의 혁신 사례였던 보르도 TV와 스마트폰 갤럭시S를 각각 디자인한 디자인 전문가 2명과 삼성전자 경쟁력의 핵심인 공급망 관리(SCM) 전문가 1명 등이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무선통신, 스마트폰 사용자인터페이스(UX) 등의 분야 엔지니어들을 임원으로 승진시켜왔다. 지난 2014년 33세 나이에 상무로 승진한 UX 전문가 프라나브 미스트리 상무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기술 또는 전문성 기반의 임원 발탁은 AI(인공지능), 전기차·자율차, 핀테크(FinTech·IT를 활용한 혁신적 금융서비스) 분야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새롭게 떠오른 분야다 보니, 30대들이 전문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SK텔레콤 AI 연구조직인 티(T)브레인 담당 임원으로 영입된 김지원 상무(1985년생)의 경우 영입 당시 31세였다. 김 상무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수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병역특례요원으로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으로 일했다. 현대자동차에서 지난 2017년 임원으로 승진한 장웅준 자율주행센터장(이사·1979년생)은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컨설팅회사 맥킨지를 거쳐 자동차 관련 스타트업을 창업해 3년 정도 운영하다 2015년 현대차그룹 첨단운전보조기술(ADAS)담당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했다. SBI저축은행은 지난 2018년 P2P(개인 대 개인) 대출 서비스 스타트업 8퍼센트에서 심사팀장과 사업기획이사를 맡았던 이은화 씨를 핀테크 담당 이사로 영입했다.


최근에는 기업 내부에서 성장한 전략 및 재무통(通) 30대가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례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SK텔레콤에서 차장급 매니저에서 부장을 건너뛰고 상무로 승진한 류병훈 상무(1980년생)가 대표적이다. 류 상무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 SK C&C에 입사했다. 이후 2017년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겼다. 류 상무는 미래 전략을 수립하는 이노베이션수트(Innovation Suite) 부서에서 근무한다. 이랜드는 지난 10월 호텔·레저 계열사인 이랜드파크 사장으로 39세인 윤성대 이랜드파크 최고재무책임자(CFO·1981년생)를 선임했다. 윤 사장은 연세대를 나와 2006년 이랜드에 입사했으며 이랜드그룹 인사팀장, 이랜드중국 아동사업부 브랜드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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