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광고조차 없는 중동에서 연 매출 2억원 노려요"

입력 2019.11.18 06:00

[이코노미조선]
"월경은 인구 절반이 경험합니다. 그런데 ‘월경’이란 단어조차 입에 담기 쑥스러워하죠. 중동은 더 심했어요. 생리대 품질도 별로였고 광고조차 없는 곳이었습니다."

올해 쿠웨이트에 생리대 수출을 시작한 김도진 해피문데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해피문데이는 국내 유기농 생리대 제조 기업 최초로 중동 시장에 진출했다. 중동은 여성 건강 산업의 불모지다. 출산율이 높지만 정작 출산의 기반인 월경에 대한 관심은 적다. 일부다처제와 조혼 풍습이 있어 여성 인권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으로 분류된다.

김 대표도 진출 초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연고가 없는 중동에서 판로를 만들기 위해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을 소개하는 행사를 돌아다녔다. 보수적인 단체에선 생리대 주제를 거절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생리대는 아기용 기저귀와 비슷하다"면서 "여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딸과 아들과도 연관 있다"고 주최 측을 설득했다.

발로 뛰어다닌 결과 마음 맞는 현지 유통 파트너가 찾아왔다. 그렇게 지난 4월 쿠웨이트에 납품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월 매출을 고려하면, 연 매출 2억원이 예상된다. 국내 연 매출은 15억원. 총매출의 10%가 중동에서 나올 전망이다. 김 대표는 "고품질 전략으로 쿠웨이트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은색 안경테 너머 보이는 올곧은 눈빛에서 그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김도진 서울대 경영학과·인류학과, ‘어떤사람들’ 이사, ‘아이디인큐’ 프로덕트 매니저, 벤처캐피털(VC) ‘더네스트앤컴퍼니’ 심사역 /  김소희 기자
김도진 서울대 경영학과·인류학과, ‘어떤사람들’ 이사, ‘아이디인큐’ 프로덕트 매니저, 벤처캐피털(VC) ‘더네스트앤컴퍼니’ 심사역 / 김소희 기자
불과 2년 전 회사를 창업했다. 창업 계기는.

"도전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스타트업 업계에서 근무했다. 정보기술(IT)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VC)에서 일했다. 25세 되던 해, 직장을 그만두고 1년간 ‘셀프’ 안식년을 갖겠다고 마음먹었다.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 같았다.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찾다가 생리대 기부를 시작했다. 당시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이용하는 학생의 이야기가 알려졌다. 울컥했다. 기부하는 생리대도 고품질이었으면 좋겠어서 브랜드를 알아보니 너무 비싸더라. 2017년이 되던 해,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피문데이 생리대는 무엇이 다른가.

"안전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제품을 디자인했다. 해피문데이 제품은 커버에 인조·합성 섬유 대신 천연 재료인 목화를 이용했다. 보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재료로, 피부 자극을 줄였다. 화학 성분(농약·제초제·향료·염소표백·형광증백제·포름알데히드·중금속·납)은 이용하지 않았다. 방수층은 고가의 통기성 필름을 사용해, 습도를 낮췄다."

해피문데이 생리대는 패드 한 개당 400원. 시중에 판매되는 타 브랜드 생리대와 비슷한 가격대다. 소비자 월경 주기에 맞춘 정기 배송 모델로, 유통 단계를 줄여 판매가를 낮췄다. 생리대 원재료 공개는 이 기업의 철학이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생리대 성분을 표시하라는 ‘생리대 해독작전(detox the box)’ 운동이 있었다"면서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도 재료를 공개하는데, 의약용품인 생리대도 예외가 될 수 없다"라고 했다.

중동에는 어떻게 진출했나.

"커피나 옷과 같은 기호품은 품질에 따라 수요가 늘지만, 생리대는 소비량이 고정적이다. 품질을 높여도 판매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게다가 국내에선 대기업이 고정된 파이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영미권보다는 아시아 시장에 눈길이 갔다. ‘오일 머니’로 구매력이 있는 중동이 적합했다."

쿠웨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먼저 카타르에 갔다. 하지만 당시 카타르는 테러 지원국으로 주변 아랍권 국가들에 낙인찍히면서 단교를 당했다. 쿠웨이트는 인구가 한국의 10%에 불과한 곳으로 테스트베드로 삼기 괜찮은 나라다. 우리 아이템의 시장성을 알아본 현지 유통 파트너의 제안으로 납품을 시작했다."

한국과 사업 모델이 같은가.

"중동에서도 처음에는 정기 배송 모델을 채택했다. 현지에는 DHL과 같은 글로벌 물류 업체도 있고 IT 플랫폼을 이용한 개인 배송 서비스도 많다. 하지만 현지에 법인이 없다 보니 소비자 관리가 어렵더라. 현재는 약국 위주로 납품하고 있다."

중동 소비자의 특징이 있나.

"고품질 제품에 확실한 지불 의사가 있다. 진출 초기, 모든 소비자가 부담 없이 우리 제품을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지 파트너가 품질의 차별성을 드러내려면 판매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랑이 끝에 파트너의 조언에 따라 판매가를 국내보다 2.5배 높게 잡았다. 그 가격에도 제품을 꾸준히 구매하더라."

쿠웨이트 소비자 유형은 쿠웨이트 국민과 외국인 노동자로 양분돼 있다. 쿠웨이트 통계청에 따르면 자국민 인구는 쿠웨이트 인구(464만명)의 30%(139만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소득 수준이 높아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선호한다. 반면 나머지 70%를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소득 수준이 낮다. 쿠웨이트에 진출하려면 어떤 시장을 공략할지 먼저 정해야 한다. 김 대표는 "우선 구매력이 높은 쿠웨이트 국민을 공략한다"면서도 "쿠웨이트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이후 저소득 계층도 이용가능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마케팅은 어떻게 이뤄지나.

"중동에는 생리대 마케팅이 전무하다고 봐도 된다. 문화적으로 월경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아서 국내처럼 TV 광고도 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 P&G의 제품도 사우디아라비아 공장에서 생산해, 품질이 좋지 않다. 생리대의 안전성이 중요한 이유, 생리대의 올바른 이용 방법과 같은 월경 콘텐츠를 주제로 여러 행사에서 강연했다. 한 중년 여성은 강연을 듣고 ‘일찍 결혼하고 애도 많이 낳았지만 정작 월경 관련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라면서 ‘먼 나라에서 와서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손을 붙잡고 울먹이더라."

김 대표만의 또 다른 마케팅 비법은 ‘사랑방 탐방’이다. 쿠웨이트 여성은 밤마다 이웃집을 돌아다니면서 파티를 한다. 친구를 소개하고 네트워크를 만든다. 김 대표도 두 달 동안 사랑방 시장 조사를 다녔다. 하루 평균 두 개의 사랑방에 들렀다. 현지인의 환대 속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동은 여성 인권이 낮은 곳으로 유명하다. 생리대 사업이 더욱 절실할 것 같다.

"사실 중동의 여성 인권이 낮다는 것도 편견일지도 모른다. 사랑방에서 만난 여성들은 매우 진취적이고 외향적이었다. 히잡도 개인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주장과 가부장제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어떤 여성은 마트에서 남자가 있으면 생리대를 집어 들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런가 하면 당당하게 집어 가는 사람도 있다."

중동에서 공략할 만한 사업 기회는.

"기본적으로 산부인과 병원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출산율은 높다. 우리나라의 산후조리 서비스는 충분히 수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들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으니 고민이 있더라. 사랑방 파티에서 여성들끼리 정보를 나누는데, 부정확해 보이는 것이 많았다. 월경, 출산 등 전반적인 케어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앞으로 계획은.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제공하고 싶다. IT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현재 월경 관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 월경 주기를 앱에 기록하면 나중에 산부인과에 가서도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산부인과 방문은 여성에게 진입장벽이 높다. 제때 검진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증상에 따라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인지, 다른 대처법이 있는지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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