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총선서 反이민 극우정당 ‘복스’ 약진...의석수 2배 넘게 늘어

입력 2019.11.11 11:45

"아직 승리감에 자아도취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오늘 밤은 조용히 혼자 보내겠습니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원내 3당 지위를 따낸 극우정당 복스(Vox)의 산티아고 아바스칼(43) 대표는 스페인 유력 매체 엘 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담담한 소회를 밝혔다. 24석이었던 의석 수를 52석으로 늘린 당수(黨首)로선 겸손한 인터뷰였다.

스페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0일(현지 시각) 치뤄진 총선 결과 아바스칼 대표가 이끄는 복스는 집권당인 중도좌파 사회노동당, 제 1야당인 국민당에 이은 3당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24석을 차지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회에 의석 한자리조차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페드로 산체스 현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 사회노동당은 하원 의석 350석 중 120석을 얻는데 그쳤다. 제 1당 자리는 유지했지만, 과반(176석)을 훨씬 밑돈다. 제 1야당인 중도우파 성향 국민당은 87석으로, 지난 4월 66석보다 21석이 늘었다. 아무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가운데 제 3당으로 도약한 복스의 손에 정권 창출 ‘킹 메이커’ 역할이 주어진 셈이다.

지난달 3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복스 집회에서 산티아고 아바스칼 대표(가운데)가 지지자들과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복스 집회에서 산티아고 아바스칼 대표(가운데)가 지지자들과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복스는 1975년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가 물러나고 민주주의 체제가 회복된 이후 처음 하원에 진출한 극우 정당이다. 뜻은 라틴어로 ‘목소리(vox)’. 이들이 대변하는 목소리는 스페인 민족주의와 가톨릭 보수주의 뿐이다. 무슬림과 난민은 이들에게 척결 대상이다. 복스는 이민정책 반대, 반(反)무슬림, 낙태법 강화, 카탈루냐 독립 결사 반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다.

스페인에선 30여년간 철권 통치를 했던 프랑코가 사망한 이후 지난 44년간 극우 견제 심리가 강했다. 그러나 지난해 사회당이 7년 만에 집권하고, 난민 수용을 늘리자 이에 거부감을 느낀 보수층들은 대거 극우정당 지지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1~7월 동안 바다를 통해 스페인으로 들어온 이민자는 총 2만2858명. 유럽 전체(5만7571명)의 40%에 육박한다.

엘 파이스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가뜩이나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스페인 남부 지역 국민들이 치안 불안에 대한 우려까지 커지자 무책임한 중앙 정부에 분노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복스의 든든한 지지 기반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으로 손꼽힌다.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과거 유럽 전역을 떠돌던 집시들의 정착지기도 하다. 떠돌이들이 정착한 곳에서 또다른 떠돌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기피하는 셈.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 독립 문제가 불거지면서 스페인 분열을 걱정하던 중도보수층에게 이 전략은 유효했다. 이번에 복스가 내세운 총선 후보들 가운데는 스페인 순혈주의를 내세운 프랑코 정권을 비호했던 퇴역 군 장성이 여럿 포함돼 있다.

스페인 일간지 엘 문도는 "유럽 전역에 극우 정당 바람이 다시 불어닥치면서 그동안 조용히 프랑코 독재 정권에 향수를 느껴왔던 ‘샤이 프랑코’층 중장년들마저 공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며 "복스는 ‘애국적인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정작 ‘진보적 독재 세력’으로 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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